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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욥 28:12~19 2018-09-16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시대에 따라서 이 세상의 가치는 분명히 변한다. 광물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고 특히 요즘은 신기술을 가지면 그야말로 세상의 표현이지만 팔자 고치는 일이 허다하고,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규모에 지나칠 정도로 오랜기간 R&D(research and development)에 투자해서 개발해 놓은 것을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직원이 몰래 그 기술을 경쟁 상대의 기업이나 중국으로 이직을 하면서 엄청난 재산이나 돈을 챙겨서 새로운 사회와 법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 우리 각자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 나에게 우리 가정에 값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나님은 본문의 욥의 고백을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귀한 모든 것들을 지적하고 특히 값이 나가는 보석들을 거론하면서 그런 것들로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그의 세 친구들과 오늘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분명히 누구에게나 중요한 가치의 기준은 다를 것이고 그것은 더 깊이 각자의 생각과 마음에 그리며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신앙의 사람들이고 영원을 향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하신 것과 같은 가치를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4~46)

천국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값이 되지 못하는 귀중성을 비유로 주신 귀중한 교훈이다. 여러분은 과연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사셨습니까? 아니 사도행전5장의 비극적인 주인공 부부인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아직 모든 것을 다 지불하지 못하고 적절한 기회를 저울질하면서 천국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요?

신앙의 사람들 특히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분의 다스림과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었음 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의 욥이나 시편을 가장 많이 기록한 다윗은 물론이고 역시 오늘 더러 인용하겠지만 솔로몬조차도 세상의 최고의 부귀영화를 다 맛보고 나서 고백하는 내용이 바로 말씀을 통한 지혜를 사모하라는 요청이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3:13~15) 여러분 모두가 아직 천국과 세상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더라도 이 말씀을 다 듣고 난 후에는 혼란없이 위의 거론한 신앙의 인물들처럼 주님의 말씀과 나라를 사모하고 귀하게 여겨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지불할 수 있는 …



Ⅰ.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말씀,(시19:7~9, 11~13)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참고로 제시한 시편19:1~6 자연 계시를 찬양한 다음에 이 뒷부분은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의 귀중함을 찬양하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귀중한 가를 감사하고 있다. 특히 말씀의 귀중성을 노래하고 찬양하는데 있어서 시119편의 축소판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가치를 가장 분명히 구별하고 그런 특별한 존재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환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읽게 된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에는 요점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수없이 증거되고 확인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린다.

①영혼을 소성시키며(7f), ②우둔한 자를 지혜롭게(7b), ③마음을 기쁘게 하고(8f), ④눈을 밝게 하시도다(8b), ⑤이것으로 경고를 받고(11f), ⑥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1b), ⑦허물을 능히 깨닫고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12), 이런 삶이 될 때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14)된다.

하나님과 임마누엘이 되고 교통하는 삶이 되고 동행하는 그야말로 행복한 삶이 에녹처럼 영원에까지 계속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이러한 완전한 지침이 없기 때문에 인생다운, 사람다운 삶을 살지못하고 한번에 끝나는 인생을 허송세월로 보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솔로몬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16:24)고 증거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길게 살아야 백 여년 사는 동안이라도 건강하기 의해서 보약이다 비타민이다 건강보조식품을 그렇게도 찾는데 이렇게 일곱 가지의 현재와 영원에 고루고루 양약이 되는 것이 모두 공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귀중성을 깨닫지 못하는 믿는다는 사람도 많다. 앞으로는 반드시 이러한 사람으로 살 맛나게 하는 생명의 교훈을 제대로 누리는 …



Ⅱ. 모든 사람이나 자연은 알지 못한다.(12~14)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얻을까 고심하여 철학을 좋아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사주팔자(四柱八字) 보고 별별 가능한 방법을 다 찾지만 모든 사람이 다 찾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욥도 고백하기를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12) 묻고 있는 것이다.

그 길(道)은 사람이 알 수 없고 자연의 이치나 이 세상의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욥도 고백하고 있다.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13) 세상에서도 귀한 것은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영원에 연결된 생명의 길을 찾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물속의 깊이를 알지 못해서 깊은 물이라 하는데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14) 막연히 사람들은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깊은 바다 밑에는 무엇인가 사람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을 알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으로 사실 값을 칠 수 없기 때문에 거저 주어진 신비이기 때문에 성경은 이를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려고 한다.

인류의 죄를 해결하여 이 신비를 풀어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일하신 구세주 이시고 직접 이 길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이를 우리에게 이렇게 증거해 주고 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6~27)

사실 OT성경 시편33:4~5에도 기록되기를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결국 사람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허락해 놓으신 것을 그분의 약속이나 말씀이 아니라 죄인 된 사람 스스로의 방법과 수단으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불가능할 뿐이라는 가르침이다. (골1:26~27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믿으시기를…



Ⅲ. 어느 것으로도 값을 메길 수 없는 보화,(15~19)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12) 탄식하던 욥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그것의 값이 될법한 모든 세상의 보화를 다 비교하며 제시하고 있다.

시편기자는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119:72) 하였고 지혜를 증거하던 솔로몬은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잠8:19한글) 고백하고 있다.

값이 나가는 모든 보물을 하나님의 약속과 다스림 받을 수 있는 천국의 값이 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욥의 말은 모두가 수긍할 수 밖에 없다. ①순금[순금으로도(15f), 오빌의 금이나(16f), 황금이나, 정금 장식품(17), 순금으로도(19)], ②귀한 청옥수나 남보석(값진 루비나 사파이어(16), ③수정(유리 세공품17), ④진주(18), ⑤벽옥(18), ⑥산호(18), ⑦구스의 황옥(에티오피아의 토파즈19)

이 여러 형태의 순금과 보석들의 귀중성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귀중품과 함께 대칭되는 표현이 역시 함께 기록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바꿀 수 없고,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15),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16b),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으며(17), 비길 수 없나니,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18), 비교할 수 없고,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19)]

순금이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여기에 비교되지 못할 횟수로 무려 9회나 부정되고 있다.

솔로몬은 오히려 이것을 거꾸로 표현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잠16:16)고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보화나 영광으로도 그 값을 치룰 수 없는 영원에 속한 영광의 가치를 사람이나 어떤 영광과 부귀는 물론 존귀와 영화로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이렇게 세상의 귀중하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예로 들어서 그것의 값으로 치러질 수 없음을 증거하였다.

여러분들이 듣고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즉, 생명을 주시고 사 주신 것(행:20:28)임을 믿음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예레미야는 나라의 운명이 비극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비극 앞에서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사실 예레미아처럼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그 나라를 값 주고 사야하는 것이라면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벽이 되어 있는 죄의 저주를 치울 수 있는 가치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절대적인 가치인 말씀을 얻어먹는 예레미야와 같은 감격이 오늘 나에게 있는가? 이런 귀한 말씀을 사랑하는가?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교훈이 바로 그 귀한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Ⅳ. 사모하라!(시19:10)“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우리는 육신을 위하여 맛집은 비싼 값을 치루거나 줄을 서서 기다려 서라도 그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한다. 어떤 경우에는 육신의 건강에 좋다고만 하면 뭐든지 먹을 기세이고 뭐 좋은 것 먹고 힘이 생겼다 하면 꼭 쾌락적인 쪽으로 생각하는 것을 봐도 결국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다.

앞에서 봤던 대로 우리 스스로는 죽었다 다시 산다고 해도 살 수 없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귀한 영생에 관한 하나님의 나라(교회)와 말씀을 그렇게 귀한 자세로는 아니라도 사랑하지도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워해야할 자세이다.

우리는 바로 앞에서 예레미야의 예를 들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아는 것부터 먼저 가져야 할 것 같다. 시편119편에서도 말씀의 맛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v103)

세상에서 가장 단 것은 꿀이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주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이유에서 그 달고 맛있는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도 조금은 지나친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v123)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v127)

욥도 역시 이런 표현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23:12)

지혜의 전도자 솔로몬은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잠24:13)는 당부의 권면을 하고 이것이 실제로 벌이 만드는 꿀 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연이어지는 14절이 증거해 주고 있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신령한 계시를 받았던 성경의 두 인물을 봐도 그것이 실천하는 데는 고통과 어려움이 따랐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3) 되어 있지만 그것 먹은 후에는 얼굴이 철판처럼 두꺼운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이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요 일꾼이라면 사실 에스겔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는 말씀에 먼저 순종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지막 성경인 요한계시록에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9~10)는 요한의 경험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배에서 쓴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먼저 입에서 꿀송이 같이 달게 먹고자 하는 영적인 식욕이 중요하다.

우리가 세상의 맛집 이야기를 하였다. 어쩌면 그러한 음식은 아무리 좋아도 주님의 말씀처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마15:17)하신 것처럼 우리 몸에 불과 하루를 머물 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하신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강건케 하는 생명의 교훈이다.

사람들은 영원을 살고 싶어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 영혼을 굳세게 하고 마귀 사탄과의 싸움에서 실제적인 무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엡6:17)을 송이 꿀은 고사하고 평상시 매끼 먹는 음식만큼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 마지막 시대의 비극이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성경은 늘 안타까운 교훈으로 경계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귀한 것이 흔한 것은 좋은 것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너무 흔해서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말씀은 주님께서 직접 주신 경계의 교훈이다. 유명한 마태복음13장의 4가지 천국의 씨앗이 뿌려진 밭의 비유로 ①길가-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19) ②돌밭-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20b~21) ③가시떨기-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22)

여기서 문제는 옥토와의 비율에서도 75% ≠ 25% 로 결실의 비율이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직분자들로 이것은 꼭 메시지를 듣는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적 양식을 찾아 먹는 성경읽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신의 양식은 배고프면 틀림없이 찾아 먹지만 영적인 양식은 일주일에 한번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은 마지막을 앞 둔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영적 식욕이 없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①병든 상태 ②잠자는 상태, ③일하지 않는 상태(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등등 물론 영적인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