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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롬 14:17~19 2018-09-30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모든 사람들은 천국을 원한다. 그럼에도 죄인들은 천국을 사모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이고 이 땅에서는 완벽하게 구현될 수 없는 이유는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일에 방해요소들이 있고 그것들은 다 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천국을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 세상일이 잘 풀려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이고 그것이 천국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할 때는 천국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국은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17f)라고 말씀하고 있다.

과연 천국은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믿음의 사람들조차 이해하는 것을 쉽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다, 육신을 입고 온 갓 유혹과 혼란이 넘쳐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혼란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지불하시고 사주신 천국은 분명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교회가 천국이라고 곧잘 이야기는 하지만 아마 ‘현대의 교회 속에서 천국을 맛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기도 한대 그것은 교회가 천국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교회는 천국을 잃은 곳이 더 많은 것 같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의 입에 달고 살 듯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어떻게 해야 누리고 살며 그곳에 장애가 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Ⅰ. 하나님의 나라는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의 주제는 ‘어떻게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는가!’와 함께 ‘유대주의 속에서 복음이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바울은 여러 부분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을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조차 쉽게 그들을 정죄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이러한 예를 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17f) 이 17절의 시작 부분에 [οὐ γάρ, 왜, 아닌가]라는 말이 기록되고 있다. 일단은 천국이 아닌 것부터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 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여기 ‘먹는 것’에는 모든 우리 삶을 위하여 취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 것이 천국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대범하게 이 교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조차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의 어떤 변화 정도로 이해를 하고 그 나라에서 통치의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가 주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는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적도 있다.(막10:38~40; 마20:21~23)

‘왜, 예수께서 가장 가까이 데리고 다녔던 제자들이 이 지경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아직 성령의 임재를 받지 못한 제자들이었기 때문이었음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도 여전히 무엇을 먹고 마시고, 하고 하지 않는 것을 천국으로 이해하는 보이는 한계를 여전히 영적인 원리에 적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17f)라는 부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비 물질적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육신의 좋은 것 우리 생각에 좋은 것을 하고, 하지 않는 것은 천국이라고 할 수 없다.

“…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b) 부정적으로 천국이 아닌 것을 먼저 말한 바울은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천국이 어떤 것임을 가르치는데 역시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본문에 연결되는 대부분의 말씀들이 그리스도인 지체 간의 관계와 교제를 경계하는 말씀 가운에 이 천국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6)는 말씀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바르지 못한 자세나 행동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비방을 받게 해서는 안된다는 경계가 그것이다.

신령하고 귀한 하나님의 나라를 마치 세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오해로 인하여 불신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음이 연약 하거나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 그런 구체적인 모습이 “너가 가는 그런 천국이라면 나는 가고 싶지 않다.” 라는 왜곡된 그리스도인의 주변에 안타까운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에 미워하거나 불안한 마음도 천국은 아니다. 지극한 화해 즉,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사죄의 은혜만이 나와 옆의 지체들과 충만이 누려져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는 주님의 외침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을 증거했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를 지시하는데 역시 앞에서 부정된 물질이 아닌 영적인 것이다. “…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b) “오직”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만이’라는 강조이다. “성령 안에 있는” 어려운 이해가 되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이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만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와 영광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도 ‘영’과 ‘진리’로 라는 방법을 명령 받고 있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①‘의(義, δικαιοσύνη)’라고 한다. 하나님나라의 절대적이고 첫째 가는 조건이 완전한 의의 통치가 그 출발이다. 그런 이유에서 예수께서는 산산수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33f)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같은 위치에 두고 계심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당연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부터가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의 천국의 요소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순종하는 사람이 그 통치를 받아들임으로 변화된 올바른 삶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은 이미 앞의 구원의 초청에서 말한바 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연이어 18절에도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증거하고 있다.

②평강(平康, εἰρήνη) 속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과 화목되므로 얻을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같은 로마서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였고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는 교훈 속에 들어난다. 여기에서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이라고 한 것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차이를 볼 뿐이다.

예배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하나님과 화해된 평강이 옆으로 서로의 지체들과 나눠지지 않는 것은 천국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첫번째의 상황이 평강 즉, 화평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 간에 화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없다.

③희락(喜樂, χαρὰ) 의를 구하고 통치를 받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자연과 더불어 화평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이름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 기쁨은 하나님과 만이 아니라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간에도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오직 성령 안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바울은 성령의 열매 속에서 이 둘을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유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또 이 세가지는 당연히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선언한 바울은 다음 장에서 이러한 것의 넘침을 축복하고 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이러한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드림을 감격으로 즐기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고백하고 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2)

또 이런 기쁨이 있어야 말씀을 받아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6)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의의 통치를 받으므로 하나님과 성도들과 화평을 누리고 세상이 중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상태이다.



Ⅱ. 천국 백성의 모습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한 사람들의 삶은 심령과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을 바울은 증거하고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은 당연히 앞에서 말한 천국을 누리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같은 의미이다.

이렇게 천국을 누리는 자는 그것이 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밖으로도 나타나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의 안에 가진 것이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신 교훈이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천국을 가진 자는 영과 육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두가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 인정을 받는 것 자체가 최고의 기쁨과 행복일 것인데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 비교될 수 없는 영광과 감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고 같은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영적임을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교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히11:6f)한 것으로 이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믿음을 인정하고 계심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②“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기록되고 있다. 죄악 된 세상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고 순종할 수는 없지만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어 있다. 여기에 주의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ἀνθρώπος)” 즉, 일반적인 사람들로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불신의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디모데전서3:7에서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교회의 중직인 장로의 자격에서 이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바로 천국을 지닌 자라야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누리고 사는 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람들 심지어 불신의 사람들에게 조차 칭찬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 이러한 나타나는 결과로서 나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인지 검증이 될 것이다.



Ⅲ. 천국 백성의 힘쓰는 것(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이 부분의 말씀은 앞의 가르침과 조금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평강’이라고 했는데 화평의 일을 힘쓰라고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것은 넘쳐도 절대로 손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평강은 평강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러므로”는 당연히 앞의 17~18절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면서 이 14장 전체가 다루고 있는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가 모두 함께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교회에 최고로 힘써야 할 것은 어떤 것보다는 화평케 하는 일이다. 바울은 그 많은 성령의 은사에도 불구하고 혼란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고 증거하고 있다.

지상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원수 되었던 죄인들과의 담을 허시고 그 십자가 아래에 모든 인류를 화평으로 화해시키는 부르심의 도구이다. 이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화평을 힘쓰는 기관이라면 그 구성원들 간에 화평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의 지체 간에 화평하지 못한 가운데 사람들을 화평으로 이끈다는 것은 호소력이 없다.

그런 이유에서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힘쓰나니”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교회가 힘써야 할 하나님의 주신 과제요 사명이다. 여기 “화평(εἰρήνη)”은 당연히 천국의 요소중의 하나였던 “평강(εἰρήνη)”이란 말과 원어상으로 꼭 같은 낱말이다.

역시 “덕을 세우는 일(οἰκοδομή, 집을 짓다, 건설하다) 을 힘쓰나니” 했는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령의 은사로 인한 혼란의 일을 두고도 “덕을 세우기 위하여”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고전14:12, 26)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야 하는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기관이요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관련되고 천국의 속성과 관련되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교회의 모형이요 도전이 되어야 한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교회를 향한 평가를 보면 이런 부분에서 교회가 바른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교회들을 가만 두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벧전4:17f)라는 두려운 경고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적인 좋은 것들을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치로 오직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이라 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천국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사람들에게서도 칭찬을 받는다 하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꼭 참고하고 말씀을 확인하면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23) 모두가 믿음을 따라 행하므로 죄가 아닌 의를 행하는 모두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