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3:15~16 정확한 의미?
2005-01-04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어릴때 부터 이 말씀이 저에겐 참 부담으로 왔습니다.

교회교육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모태신앙의 단점이 '미지근함'이라고 하면서 항상 이 말씀을 비유로 들었었죠..일종의 콤플렉스로 여전히 이 말씀만 들으면 맘이 어려워집니다..



성령님께서 직접 깨달음을 주실거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데 정확한 성경적인 해석을 알아야겠기에 여쭙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도 들구요..



하나님께 뜨겁고 사탄에 차가우라..라오디게아 교회의 무관심함에 대한 지적이라는 풀이도 있는데..모두 완전한 공감이 됩니다만 그래도 제가 공부하고 있는 BCC의 고견을 듣고싶네요..이 말씀으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얻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게시판들에서 자매님의 이름들을 반갑게 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관한 바른 진단은 사실 그 교회에 임하시는 주님의 묘사에서도 해답이 가능합니다.



14절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이 묘사에서 보는 주님의 모습은 “진실”과 “충성”과 “창조의 근본”이시라는 부분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나타나시는 것은 이 교회가 “진실”과 “충성”과 “참된 증인”과 “창조의 근본”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사랑하는 모습이 결여(缺如)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도 죄에 대한 차가운 결별도 없이 물로 비유하면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고 색상이 분명하지 못한 회색(灰色)과 같은, 좋게 표현하면 중용(中庸)이라고 하는 적당한 타협주의의 자세입니다.



요즘 이런 모습들이 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의 경계지점에 존재하면서 아차 하면 천국이든 세상이든 관계없이 안전 지대로 튀려는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의 유두고와 같은 모습이지요..



하나님은 이러한 타협주의를 싫어 하십니다.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리야를 통하여 책망하십니다.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왕상 18:21)



세상은 그들과 잘 타협하는 종교인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세상과 타협하는 백성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가련한 영혼은 뜨겁게 사랑하며 죄에 대하여는 차갑게 단절하는 확실한 자세를 원하십니다.



결국 지련님께서 가지신 신앙적 판단과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부탁 하셨는데 이 말씀이 도움이 될런지요…!



우리 모두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를 견지합시다. 주님은 반드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