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자범죄
2006-03-29



요일1:9은 우리가 어떤 죄든지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죄를 자백하지 못하고 죽은 경우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게 되는지요? 그리고 신자가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살인죄를 범했다고 보겠는데, 그 사람은 죄를 자백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갔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라 보아야 하는지요?  아니면 중간에 타락한 자로 보아야 하는지요?



샬롬!



우리가 언제나 범죄의 사실을 깨달을 때 자백하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생각나지 않은 죄, 의식하지 못한 죄는 용서가 되지 않아서 결국 죄가 쌓여 지옥을 가게 되는가? 우리의 구원이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라면 율법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의 죄를 이미 십자가에 못박아 도말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주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 한정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죄만 용서 된다면 저를 포함하여 구원 받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이 인간의 공로에 좌우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요한 서신의 글을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6~18)



여기서 특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안다” 라는 부분을 중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조건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우리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삶이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여 사는 사람은 구원에 의심이 생길 정도의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를 결코 범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의롭게 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자신의 경건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을 의지함으로 가능함을 인정한다면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결국 주님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든 중간이든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논의의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불완전한 비유를 하나 들면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고속버스 표를 샀을 때, 그는 서울까지 가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표에는 ‘도중하차 시 무효’ 라고 인쇄가 되어 있고 대구쯤 가다가 휴게소에서 내려버리고 말면 그 표는 가치를 잃고 맙니다.



물론 신앙에 있어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영생의 권한자체를 인간이 취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주셨다는 데서 불완전한 비유라고 전제한 것입니다.



모든 계약이나 약속은 당사자 간에 맺어진 약속이 지켜질 때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약속을 어기시지 않는 분이시고 어기실 수도 없는 분이지만 인간이 그 약속을 파기한다면 그 약속을 파기한 당사자에게는 효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잘라 말해서 아무리 어려워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은혜로 믿고 십자가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자살 같은 행동은 하지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