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하기 힘듭니다.
2006-09-15



오랜만에 또 글을 남기네요.

이 곳에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힘들 때 이렇게라도 기댈 수 있어 먼저 감사드립니다.

지면상 제 개인적인 애기를 다 쓰기는 힘들고, 간단히 요약해 쓰겠습니다.



신앙인이면 똑같은 문제, 갈등에서 그만 벗어나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어야 마땅한데, 제가 갖고 있는 상처들이 현재 넘 많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기는 커녕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싫어하고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날 무시하고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되면

그 상대방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예전에 저만 혼나고 따돌림당하고, 놀림당하고 무시당하고 그런 경험이 많아

지금까지도 똑같은 상황하에서 다른 사람한텐 안 그러는데, 저한테만 불공평하게

또는 함부로 대한다든지, 서운해한다든지, 화낸다든지 하면 제 안에 있는

분노가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교회는 다녀도 신앙생홯하기도 힘들고요.

말씀이 제 맘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말씀대로 살면 또 상처받을 게 뻔해서.. 하나님도 결국은 제 아픈 마음을 아시고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해 보상해주시겠지 생각도 해보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도 저한테 보이는 건 계속적인 갈등과 문제의 연속이니깐요.

이럴 때 보면 하나님도 결국은 힘있고, 강한 사람편에 있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상담자님! 물론 정답은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모태신앙이라 그런지 솔직히 미지근한 신앙인 이유도 있구요.

워낙 내면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피해의식, 상처들이 많아 감사보단 불평, 원망, 미움, 싫음 등이 더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쩌다 가끔 신앙이 뜨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도 일시적이고요.

교회안에서도 그것도 목사님, 사모님께 상처받은 사건들이 여러번 있어

자꾸만 제 마음엔 사람들을 향한 경계가 더 높아감을 느낍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을 거란 생각에...



물론 상처의 부분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사람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상대적인 거란 건 압니다.

긍정적으로도 생각해보려고 여러번 노력도 해 봤고, 실천도 해 봤지만,

일시적이지 장기적으론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칭찬, 인정보다 꾸지람, 무시당함, 놀림당함 등 부정적인 경험들을 많이 해서

그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요즘 저만큼 상처투성이인 힘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도 침묵만 하시는 것 같고...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성경에 나오는 말씀 등 대부분 믿긴

하는데, 그 믿음으로 인해 가슴과 마음은 별로 뜨거워지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앞서서도 말했지만, 어려서부터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당했고,

기도를 해도 그런 경험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기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긴 하는 건지

날 좋은 방향으로 이끄시려고는 하는 건지 마음 속 깊이 확신이 안 섭니다.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어른들한테 무리한 요구도 받아왔고,

그런데, 제가 아주 신실한 신앙인도 아니고,

세상에서도 힘들고, 신앙인으로서도 힘들고

어쩔 땐 신앙의 길이 이렇게 힘들 줄 진작 알았으면

어려서부터 신앙의 길로 들어서지 말고, 차라리 세상에서 즐길대로 즐기다가

중간에 신앙생활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는 이렇게 신앙생활할 바엔 차라리신앙의 길을 접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지금 제 상황이 그런 생각이 들게 하네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지만, 상담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가치를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합니다. 나 자신의 신앙적 자세에 따라 나 자신의 영적 가치는 결정되며 사람들 앞에 보여지게 됩니다.



세상의 상품의 가치를 위해서도 사람들은 얼마나 노력들을 합니까? 생명이 없는 순간적인 물건이나 상품에 대해서도 가치를 높이려고 그처럼 애쓰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 사람의 가치를 위해서는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을 해야 하겠습니까?



죄의 사람,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의 가치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한 멸망할 짐승하고 다름이 없습니다.(시 49:20)



기도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입장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이론이 됩니다.



만약에 나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나는 없는 것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계시는 것이지요…(갈 2:20)



완전히 그럴 때는 오히려 나에게 공격해 오는 사람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것이 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숨으라고 권면 하는 것이지요.



경님께서는 “말씀대로 살면 또 상처 받을 게 뻔해서.. 하나님도 결국은 제 아픈 마음을 아시고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해 보상해주시겠지 생각도 해보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고백은 믿음의 고백 같기도 하고 포기 같이도 들립니다. 결국 하나님은 절대로 강자의 편이 아니심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약자의 편도 아니십니다.(출 23:3), (출 30:15)



하나님은 진리의 편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약할 수 밖에 없고 주님을 의지할 때만 의로울 수 있고 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또 다시 드리는 부탁이지만, 모든 문제를 스스로 감당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으로 끌어 들이십시오.



“어쩔 땐 신앙의 길이 이렇게 힘들 줄 진작 알았으면 어려서 부터 신앙의 길로 들어서지 말고, 차라리 세상에서 즐길대로 즐기다가 중간에 신앙생활 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는 이렇게 신앙생활 할 바엔 차라리 신앙의 길을 접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셨는데 언제 세상을 뜰지 안다면 그래도 되겠지요!



그러나 경님께서 현실의 상황도 그렇게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상을 언제 뜰지 아실 수 있으신지요?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나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억울한 누명으로 죄수가 되어 로마의 감옥 속에 참수형(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사형 제도)의 죽음을 기다리는 바울, 그리고 하루 아침에 자녀와 재산과 건강 조차도 잃어 버리고 아내와 친구들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는 욥, 아직까지 이런 경험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처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2~8) 한 것처럼 이런 형편에서도 믿음으로 이긴 자들을 비교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판단으로 세상이나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주님의 기준으로 범사를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어려운 형편을 온전히 맡길 수 있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과 삶으로 깨달을 때 자유는 오는 것입니다.(요 8: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