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기우스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2003-10-11



원죄에 대해서 읽어보니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교리적 차이가 있던데 구원론, 세례은총, 자유의지에 대해서 펠라기우스와 교리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꼭 좀 가르쳐 주세요...



1. 자유의지와 구원론



1) 어거스틴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는 그 자체가 그것 자체의 원인이라고 믿었습니다.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할 때, 우리는 밖에 있는 그 무엇이나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에 의하여 원인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원인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가 주장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행위가 구원에 공헌한다는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기독교인이 되고자 의지하였고, 또한 의지하지 않았던 때의 경험을 기억하였기 때문입니다. 의지란 항상 자신의 주인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죄의 권세가 인간의 의지를 점령하고 있는 바, 인간이 이 권세하에 있는 동안 인간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겁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이러한 주장이 자유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죄를 범할 수도 있고, 죄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았고, 타락 이후부터 구원 이전까지의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만을 가지고 있다" 고 보았으며, 구속함을 받은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와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갖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하늘나라의 시민들만이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가질 것이다."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은혜를 수용할 것을 결단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심에서 시발과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더군다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예정된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의 원죄론과 예정론이 나타납니다.



2) 펠라기우스

펠라기우스는 각 인간은 죄를 지을 수고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원죄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강요당하는 타락한 인간본성이란 있을 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죄 짓기를 결단하게 될 때까지 아무 죄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펠라기우스가 믿었던 구원론은 평생토록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죄를 극복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유로운 존재로 지으셨고, 악의 근원이 의지에 있다고 주장한 어거스틴의 주장에는 동의했으나, 자연인 스스로가 죄를 극복할 수 있고 성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죄나 구원모두 인간의 책임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행위가 구원에 공헌한다는 것입니다.



2. 세례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르르강조하는 한편 세례까지도 부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마가복음 16:16)(사도행전 2:27-38)(사도행전 10,16장 등)에서 분명히 세례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반복 명시되고 있는데, 이들은 여기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 결론



그들은 자유의지라는 공통 인식을 통해 죄(악)의 근원을 설명하려 했다는점에서 공통된 공헌을 하였고,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을, 펠라기우스는 인간의지라는 타당한 주장을 통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너무 강조하다가 성경의 중심에서 두 사람 모두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원죄와 예정 교리에서, 펠라기우스는 구원론에서 각각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것 역시 그들의 원죄론, 자유의지론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에(종교를 떠나서도) 어거스틴의 주장은 마틴 루터의 「노예 의지론」에서,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에라스무스의「자유 의지론」에서 재대결하는 모습으로 이어졌고, 현대에도 "하나님의 전적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로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나 펠라기우스 모두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거나,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실제로 교회사에서도 그들의 지지 세력은 만만치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행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고, 구원의 길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도서

유스토, L. 곤잘레스 著, 서영일 역(譯), 초대교회사, 은성.

토니 레인, 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 사상사, 도서출판 나침반사.

이형기, 세계교회사(1), 한국장로교출판사

원색세계대백과사전(30), 한국교육문화사.



반문드리겠습니다. "원죄"라는 말을 언제, 누가, 왜 처음 사용하였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원죄라는 용어가 성경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습니까?  성경에는 그런 용어와 언어적 개념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만, 후세의 사람들이 성경 일부의 내용을 인용하여 "원죄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은 그들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해가 갑니다. 원죄론의 근간은 그들이 살아온 일생과 대단히 큰 관계가 있습니다. 원죄론을 주장한 어거스틴은 그가 하나님의 품으로 오기 전까지 방탕과 범죄로 일관된 생활이었고, 원죄론을 반박한 펠라기우스의 생애는 거의 성자에 가까운 경건한 생활로 일관된 생애였습니다.  



교회사에서 처음 원죄를 주장한 사람은 터툴리안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이 이 주장이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원죄를 강력하게 발전시킨 사람은 "참회록"으로 유명한 어거스틴(Augustinus)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을 통해서도 잘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는 여러 종교를 전전하고 허랑방탕하였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애간장을 태우며 많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후에 당시 유명한 신학자이자 경건한 사람이었던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지지자를 등에 없고 승리하여 펠라기우스를 이단자로 몰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영국인 수도사로서 5세기 초에 로마의 도덕적인 부패의 시정에 노력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온순하고, 품행이 엄정하였으며 지식과 판단력에서도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 후에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 그의 학설이 퍼졌는데,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죄가 유전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원죄를 부정했습니다.



이 정도면 그의 주장과 어거스틴의 주장의 상반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펠라기우스 주장의 골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원죄의 상태로 창조하여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가정할 때에 파생되는 문제와 그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만일 인간이 원죄의 상태로 태어난다면 그러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거룩성과 전능, 그리고 책임에 큰 문제가 야기되는데, 그는 이러한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그는 결국 이단으로 단정되어 정죄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수의 결의에 의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100% 진리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진리가 비진리에 의해 매장 당하고, 매도 당한 역사도 수 없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에베소 회의의 결과에 연연하지만 않는다면,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가 치열하게 벌였던 그 논쟁을 지금의 우리들도 얼마든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수 있는 것입니다.





           *** 아래의 도표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교리적 차이



어거스틴(어)                  펠라기우스(펠)



1) 구원의 원리

* 하나님의 예정,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구원(어)

*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펠)



2) 죽음의 원인

* 아담은 죄로 죽음.(어)  

* 아담은 처음부터 죽을 사람으로 출생. 범죄 여부 없이 죽음.(펠)



3) 죄의 영향력

* 아담의 죄 후손에게 영향.(어)

* 아담의 죄는 아담에게만 적용되고, 전 인류는 아담의 죄와 무관함.(펠)



4) 원죄와 유아의 관계

* 유아에게도 원죄 있음.(어)

* 새로 태어난 유아는 (범죄 이전의)아담과 동일.(펠)



5) 구원의 길

*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죽으며, 그리스도의 구속만이 유일한 길.(어)

* 율법도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부활로 인하여 영생.(펠)



6) 구원의 방법

* 믿음 통해 구원, 세례시 죄용서 받음(赦罪).(어)

* 그리스도 오기 전에도 무죄(無罪)자가 있었음.(펠)





펠라기우스 주장의 일부에 성서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예컨대 인간의 원죄 여부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이 성서적이며,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는 어거스틴의 주장이 더 성서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펠라기우스의 주장 가운데 일부분이 틀렸다고 해서 주장 전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어거스틴의 주장의 일부가 맞았다고 해서 그의 주장 전체가 맞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기독교계는 어거스틴의 주장 전체는 정통으로,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모두 이단으로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낙인 찍고 말았습니다. 다행한 것은 오늘날 성서를 연구하는 분들이 이러한 획일적인 결정(원래부터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수결이나 특정 원칙의 결정에 의한)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의 요점들은 오늘날까지도 신학자들 간에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냐, 아니면 인간의 의지냐"하는 것을 위시하여 다른 사항들이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주장이나 가르침보다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의 말장난이 아닌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원죄설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자들간 싸움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원죄를 유전 받고 태어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죄에 대하여

원죄에 대하여 추론하는 성경 구절은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원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원죄설의 추론적 말씀 첫 번째는 "다윗의 시"인 시편 51:5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사람들이 죄를 유전받고 나왔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죄악 중에 출생했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죄악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죄악이 있는 세상 가운데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든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밤중에 환한 방에 있다가, 불빛 하나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 때에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내가 어둠 가운데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방은 어둡지만 그 사람 자체가 어둠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어둠 속으로 들어 옴으로써 어둠 속에 갖혔을 뿐, 애초부터 어두움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검은 색을 띤 물 속으로 사람이 뛰어 들었다고 할 때에, 그 사람이 물 속에 들어 간 순간 피부 바깥으로 검은 색깔이 물 들 수는 있으나 그가 원래 검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검은 사람이 아니라, 검은 물 가운데로 들어갔을 뿐이며, 그것은 그에게 검은 빛으로 물들게 하는 후속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인간들이 죄인이라는 것은 천성적으로 죄를 띄고 나온 것이 아니라, 죄가 가득한 세상에 들어오면서 죄가 물들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원죄란 말은 성경에 단 1회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몇 구절에 의하여 추론(증명되지는 않고 추정되는 이론)될 뿐이며, 오히려 인간의 죄는 자신의 것만 자신이 책임져야 함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에스겔 18장을 읽어보십시오. 특히 18:4, 19-24).

(겔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18: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겔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겔18: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겔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