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만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2013-05-13



요즘 교회도 잘 안나가고 있는 탕자이지만서도, 궁금한 것이 생겨서 질문드립니다.



FAQ에 여러번 나왔던 영아(어린아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오지의 원주민,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사람들)의 구원에 관한 의문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곳의 답변 중 몇몇이 "예/아니오"가 아닌 성경구절을 보여주고 '알아서 판단하라'라는 형태가 있기에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http://www.bible.kr/BCC/library/lib_faq_view.php?code=qna&search=&s_item=&s_cont=&no=174&page=)



현대 기독교에 금기시 되고 있는 최고의 내용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라는 명제가 부정되는 것이 맞을겁니다.



그런데, 영아에 대한 구원 문제와, 침례에 대한 구원 문제에서 위의 명제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의문이 큽니다.



아담의 원죄라는 것이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영아(어린아이)가 구원받는다고 여러군데서 답변을 하셨던데요.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은 예수가 아닌 죄가 없는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어린아이들은 죄가 없으므로 예수님의 죽음이 어린아이들과는 관계없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구원과 침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요3:5)

②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③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고 하여 침례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의문은 이 곳의 답변에서 "믿고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라고 답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http://www.bible.or.kr/BCC/library/lib_faq_view.php?code=qna&search=&s_item=&s_cont=&no=123&page=3)

구원은 믿음이고 세례는 행위 아닙니까? 뭔가 헷갈립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구원의 영원성/한정성"에 관해 궁금합니다.



FAQ에서의 답변은 "구원은 행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답변하고 있는데요.



성경을 보면 조금 헷갈립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써의 구원이므로 한 번 구원받은 자는 지옥에 떨어질 방법이 없다'라고 이해하게 된 성경구절은



①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②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③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④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⑥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⑦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⑧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0,28)



이보다 더 많은 곳에서 구원은 행위와는 관계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를 혼란케 하는 것은 언듯 이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구절들이지요.



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32:33)

②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히브리서를 보면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내세의 능력까지 맛본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구원받지 못한자가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헷갈립니다. 제 궁금을 해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질문을 정리하면,



Ⅰ. 영아(어린아이)의 천국행은 예수님의 죽음과 상관이 없는건지,

Ⅱ. 환경상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구원 문제,

(1,2번은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근거가 예수인지, 자신의 의인지, 아니면 무지(無知)인지 궁금)

Ⅲ. 침례(세례)는 행위인데, 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지,

Ⅳ. 한번 구원받은 자가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지



이렇게 네 가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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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성경엔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라고 하였고, 이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굳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록으로 남기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FAQ의 답변 글 중에는 이러한 내용도 있더군요.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이런 일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는 지금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하고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한사람이라도 구원받게 하는 일이 이러한 이미 끝나버린 과거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문제는 저같이 믿음이 약하거나 애매한 사람들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에서 궁금증이 커지게 되죠. 이럴 때 고민과 궁금을 기도로써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호기심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본성상 한가지를 알려주면 "그 다음은요? 그 다음은요?"하면서 끝없이 묻겠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만 성경으로 남기신 것은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바로 위에 FAQ의 답변 같이 '성경에 나오지 않은 것은 알 필요가 없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면 믿음이 어리고 잡아줄 리더가 없는 사람은 시험에 빠지기 쉽상이라는 거죠.



언듯보니 성경통신교육원의 자주 올라오는 질문(FAQ)의 반박 같기도 한데, 저는 정말 몰라서 질문드리는 것이거든요. 구체적인 답변을 원합니다. 예/아니오 같은 명쾌한 답변은 더 더욱 좋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탕자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믿으면 구원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진리에 갈증을 가지신 것에 감사와 존경을 갖습니다.



지적하신 내용을 1. 2. 3. 식으로 간략히 답변을 드려볼까 합니다.





1.바꾸어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에게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벌하신다면 과연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율법을 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하면서 바울은 (롬 2:12~15)를 말하고 있습니다.(행 17:30)참고)



아담 이후 인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에 오셨지만 그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는 모든 시대에 미친다고 확신합니다. 심지어 구약의 율법 시대의 성도들도 자신의 율법을 지킨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공로로 구원 받는다고 믿습니다.(히 9:15)



이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하기 이전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신 것이고(엡 1:4~5)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하와를 속여서 범죄케 한 사탄에게 하신 선언입니다.(창 3:15)





2.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을 우리가 행위로 봐야 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하느냐 정도의 논리 같은 것입니다. 복음에는 반드시 거기에 거듭날 것을 요청하는 밥티스마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사도행전 8:35에 빌립은 내시에게 그가 읽던 글에서 “시작하며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라고 되어 있는데 거기에 반응하는 내시가 36절에 세례를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빌립이 내시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것을 [복음] 속에서 말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응답은 반드시 밥티스마로 응답하게 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직접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님께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럼으로 믿음이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역사하는 믿음”(갈 5:6); (살전 1:3) 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밥티스마를 명령하신 것은 죽으시고 장사 되신 후 즉, 부화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명령이므로 적어도 부활 이전의 육신으로 계실 때까지 심지어는 십자가의 우편 강도에게 까지도 밥티스마를 가지고 논쟁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3.여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용하신 구절들의 대부분은 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부정하는 내용들입니다. 즉 계율을 지키고 못 지키는 인간 노력의지와 대응되는 구절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유지해 가는 것 조차도 나의 순종하려는 의지와 성령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지 스스로의 노력과 애씀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이래서 구원도 은혜요 구원의 여정도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구원받은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고 바울 사도는 이를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신과 성령의 열매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갈 5: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