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부활을 경험하며 살수 있습니까?
2014-02-0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의 질문은 그냥 드리는 질문이 아니고 오랜동안 고민한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이오니 부디 큰 도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이 큰 것에 부딧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부딧히면서 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목사님이나, 신부님, 스님 조차도 결국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부딧히는 많은 인간관계와 위치 성격등에서 짜증나고 괴로워하고 상처 주고 받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는거 믿습니다.

전도하다 받는 핍박에 대한 우리의 대처에 대해서도 답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속에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한 기준과 기독교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제가 아는 바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며 살아라 입니다.

사랑은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 1000억원이라서 동료나 가족 친구가 저에게 찌르는 4원짜리 10원짜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라고 생각하라는것이 교회의 가르침인거 같습니다...



근데,  그럴경우 회사에서 호구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만만해보인다'  '깔보인다'  '얕잡아보인다' 의 의미입니다.  오른빰때리면 왼빰대고, 달라면 주고 사랑으로 다 받아주고 하다보면  세상에서는 호구로 살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말 어떻게 생활속에서 사는것이 맞는걸까?

예수님은 어떠햇을까?  24살의 예수님, 26살? 29살..   성경에는 없습니다.  알 필요가 없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은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25살의 예수님이 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  남에게 상처주는일을 하지 않았을까? 목수일 하면서 꾸지람을 들었을까?  신앙문제로서가 아니라 다른걸로 주위사람이 상처주거나 상처받는 삶을 전혀 살지 않으셧나?

무결점을 사셨다면 신으로 살았다는 말이될텐데,  그렇다면 그런 삶이 제가 찾는 삶인데.. 기록이 없으니 몰라도 되는거 같습니다.



이세상 사는 법이 그리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요?  대충 살라는 것인가..



추후에 제가 발견한 원리는 생활속의 부활원리 입니다. 맞는지요?



호구도 부활한다.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것은 주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 로만 그치는 원리인가요?

죽음이 곧 나를 죽이는것이고 부활이 곧 역전 승리라면

생활속에서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요?



정말 회사생활에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이 부리기에 편한 사람이 되고,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결국 자신의 위치가 역전되는 것이 진리입니까?  



여기에 대한 응답은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이웃을 사랑해라 라고 말하는 진정한 뜻은 무엇이고 왜 그러해야합니까?



천국가서 예수님이 잘했다 칭찬해 주기 때문입니까,  오직 그것뿐인가요?



세상의 법칙은 알고 싶지 않고



예수님의 법칙은 결국 호구도 부활한다 라고 알아도 되겠습니까?



생활속에서 져주고 남을 위하고 그렇게 사는것이 결국 60평생 살면서도 이롭고 좋은 결과를 준다고 예수님의 부활로 그것이 증명되었다고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정말요?



많은 부분에서 질의 응답이 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질문이 거의 없고 해서 자주 살피지 못해서 답변이 늦은점 먼저 사과 드립니다.



예, 신앙은 어떤 특별한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소한 일상에 적용되는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내 안에 와 계신 주님의 의지보다는 늘 자신이 사건과 부딪히려고 하는 잘못된 신앙적 의지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히 해답이 없습니다.



영생이 무엇인가를 바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영생은 막연한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의 변화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은 그냥 영원한 길이의 삶이 아니라 삶의 질의 변화로 이제껏 내가 부딪히던 모든 삶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확실히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나의 모든 의지는 죽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 보기에 말씀하신 대로 과연 바보(말씀하신 호구)처럼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주변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냥 인간적으로 죽어 사는 바보와 같은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위엄을 가지고 살았고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히 11:38)



예수님의 젊은 시절의 삶이 기록이 안된 것은 답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특히 12살 때의 기록이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되고 있는 것은 주님의 삶의 일면입니다. 주님은 어쩔 수 없는 속상하고 풍족하지 못한 목수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눅 2:51)



주님은 비록 우리와 꼭 같은 환경이나 처지를 경험하고 사셨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려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시거나 아픔을 주시지 않은 것도 확실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이 이 세상에서 결코 녹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거듭나서 성령의 전이 되어 사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평안을 누리고(눅 14:27) 위로하시는 보혜사의 인정을 즐길 것입니다.



또 천국은 죽도록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위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천국의 위엄을 가지고 산 사람들의 다음 세계의 연장입니다.



전도도 무책임하게 예수 이름을 던져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된 삶에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를 나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벧전 3:15)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말씀에서 나오지 않으면 성령께서도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바른 교훈 위에 우리 각자의 믿음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