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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1:1~5 2008-01-06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신약성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 세 사람을 꼽으라면 신약성경의 절반의 책 수를 기록한 바울 사도와 5권의 저술가인 사도 요한, 그리고 비록 2권의 책이지만 그 양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이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당시의 철학과 의학을 두루 섭렵하도록 준비하셔서 실제적인 복음의 진행의 역사를 박진감있게[이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진행이 흥미롭고 신비함을 계속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체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역시 창세전부터 준비하신 은혜의 역사라고 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서라고 하는 데서도 이 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는데 만약에 이 책이 없었다면 주님의 피흘림과 부활로 완성하신 복음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특히 주님께서 예언하시고 가신 성령(요14~16장)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상의 처음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야 말로 우리 모든 역사 속의 교회가 본받아야 할 원형의 교회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는 미국 교회도 아니고 유럽의 교회도 아니라 바로 이 사도행전 속의 교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속의 교회를 미완성의 교회로, 원시 교회라고 하여 성경에 없는 교리나 조직을 만들고 그러한 것들이 완성될 교회 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기록된 서신들과 더불어 성경은 신앙이나 조직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기 때문에 만약에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우리는 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능력과 그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과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어두움과 무지, 그리고 마귀 사탄이 묶임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오늘의 이 역사 속에 동일한 복음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세를 선포하는 것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땅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하늘의 명령을 확신하게 된다.

이미 이 사도행전의 주제는 1:8절에서 선언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적인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을 향하여 이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나눠주는 귀중한 하늘의 사자들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역할 하는 …



Ⅰ.명칭과 저자.

먼저 이 거룩한 책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하나님께서 이 복된 서신을 그의 거룩한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기록하신 도구로서의 쓴 사람을 살펴 보는 것이 첫째일 것이다.

1.명칭. 대부분의 성경들은 그 기록자의 이름이나 그 서신을 받는 대상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사도행전은 대단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 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성경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성경처럼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직접 불림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이 복음을 그 복음의 발생지인 예루살렘에서 세상 끝까지 증거 하는 일을 행한다고 하는 데서 사도들의 증거 하는 일을 주체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프락세이스(prakseis), 활동, 행위, 기능, 직무, 일] 그러나 이 성경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도들을 도구로 하여 또 그의 후예들인 우리를 통하여 세계 열방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결국 선교조차도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시는 선교여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하는 주장들을 본다. 복음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반면에 인간이 만들 것도 아니고 인간이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2.저자. 이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사람도 역시 성령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기록이 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게 했음을 성경의 여러 군데서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디모데후서3:16이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 사도도 같은 증거를 하고 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그러므로 어떤 성경도 사람이 주체가 되서 기록한 성경은 없고 만약에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의 이성과 감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벌써 성경은 아닐 것이다.

이 사도행전은 오늘 읽은 1~2의 말씀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는 내용에서 보는 데로 “먼저 쓴 글”이 있었고 그 내용은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비슷한 시작으로 쓴 글이 복음서 가운데 바로 누가 복음이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눅1:1~3) 라는 사실에서 이 사도행전이 그 후속 편임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누가복음의 말미와 이 사도행전 시작의 연결부분이 자연스럽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는 말씀이 오늘 본문 4절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누가복음과의 비슷한 부분은 단어의 사용에서도 비슷한 낱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고, 특히 누가는 주님을 믿는 의사로 바울의 편지들에서 더러 보게 되는데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골4:14f)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4:11f) 서론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구원 역사를 위해 준비된 인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가 복음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보이지만 질병에 관한 기록들만 봐도 대단히 자세하게 또 의학적인 용어들을 쓰이고 있는 부분에서 다른 공관 복음과는 차이가 있고 이 사도행전 역시 그렇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성령의 오심으로 교회의 탄생에서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로마에까지 복음이 진행하는 것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의 말이나 생각 한 마디도 넣지 않고 오로지 복음과 성력의 역사만을 기록했다고 하는 데서 그의 인격을 엿볼 수 있고 이것은 말없이 복음을 위하여 사역하는 모습에서 오늘 복음으로 살아야 할 우리의 귀감이다.

1세기에 누가는 지식이 많은 의사였지만 세상의 그 명성이나 부귀보다도 주님의 도구로 사용된다고 하는 데서 자긍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일지라도 그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섬길 때 이 누가처럼 역사 속에 또는 바울의 고백 속에서도 귀중한 인물로 나타나는 것처럼 후대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Ⅱ.특징과 교훈.

이 사도행전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도 베드로의 유대인을 대상한 복음 증거의 내용(1~12장, 물론 나중에 최초의 이방인 개종자인 고넬료 가정의 사역이 잇긴 하지만…)과 안디옥을 중심 한 바울 사도를 통한 이방인 전도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13~28장)으로 볼 수 있다.

또 한가지의 독특한 누가의 표현의 차이에서 둘로 나눌 수 있는 내용은 “그들-3인칭”(1~15장) 이라는 전반부와 “우리-2인칭”(16~28장)으로 쓰인 후반부로도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전자가 함께 하지 못해서 전해들은 내용인 것으로 보이는 부분과 직접 저자가 참여해서 움직인 내용의 차이가 그것이다.

어찌 보면 조금은 전해 듣는 현장감이 적은 부분과 직접 겪은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실적이고 호소력이 있는 내용의 차이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차이에서 볼 때 적어도 16장 이후부터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누가가 바울과 함께 다니고 머무르며 바울과 동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도행전의 진행과정을 보면 특히 바울을 통한 이방인 전도에서 어디서나 복음의 반대자와 박해자는 유대인들이었고 거기에 반해서 로마의 관원들은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분명히 구약의 예언을 통해서 오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이렇게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의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그 복음을 탄생시킨 당사자들이라는 데서 바울의 안타까움이 있었고 이 복음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을 본다.

가끔은 구약의 예언들을 인용하면서 이 복음이 바로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메시야 왕국의 실현이라고 유대인들을 향하여 호소하는가 하면 당시의 정치 권력을 잡고 있던 로마의 관료들을 향하여도 비록 하늘에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르긴 하지만 완전한 의의 통치의 시대가 올 것을 경고하면서 그들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또 당시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던 헬라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얽매임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진정한 밝은 학문은 다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 뿐임을 계속해서 증거 한다.

바울의 유대인의 산해드린 공회에서 그리고 로마의 정치가들과 법정에서도 오로지 복음을 증거 했고, 헬라의 철학자들에게도 같은 증거를 했다.

세례 요한의 외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도 “천국이 가까웠다!” 였었다. 그러나 이 사도행전은 그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모습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산을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함께 성령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①이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주신 증거의 책이다. [Theovilos, 하나님의 친구에게 쓰여지고 있다.] 만약에 하나님의 친구가 아니라면 이 글을 읽고 코웃음을 칠 뿐이다. ②앞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본 서신의 중심은 사도들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에 의해서 선포되고 최종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③본서는 교회의 모범이다. 교회의 권능과 역할과 이유를 제시한다. 예배와 교제와 봉사와 선교와 찬양을 보여주고 있다.

④복음으로 인간의 자유와 가치와 기쁨을 찾아 준다. 사람이 찾아야 할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진정한 기쁨과 유쾌하게 되는 비결과 흔연한 인생을 부여주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영원히 인류와 함께 있을 약속이 바로 그 주님을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⑤이 성경은 사람이 일생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제시한다. 아니 무엇을 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우선이며 귀중함을 보여준다.

⑥새로운 창조의 책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실제적인 예를 여러 모형에서 제시한다. 죄로 죽은 인생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실례를 수없이 들어 보여주고 있다. ⑦구약의 완결과 새 언약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도행전 이후에 비로소 유월절의 의미와 오순절을 통하여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체험케 하여 구약의 모든 언약을 이루심을 보게 한다.



Ⅲ.우리 시대의 적용과 과제.

이 귀중한 살아있는 역사를 죽은 책으로 읽고 말까 봐 염려스럽다. 성령으로 기록된 책이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임에도 단순한 보이는 것에서 끝나버린다면 오히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으로 주님 오실 때 까지 쓰여져 가야 하는 책이다. 그러면 과연 이 역사 속에서 이 사도행전을 계승해서 써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하였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6~7) 어떤 조건에서든지 성령의 지시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 새로운 역사의 주체이신 성령의 도구로 살 수 있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앞세울 때, 인간의 입장을 앞세울 때, 또 인간의 이성을 성령보다 앞세울 때 하나님의 영은 그러한 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 거룩한 성령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말씀이 없는 어두운 곳에는 언제나 어두움의 영이 성령인체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수없이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부분에서 이 사도행전의 이해가 성경이 가르치는 그대로가 아니라 여태 것 만들어진 틀 속에서 이해되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안타깝고 그러한 부분들도 과감히 바로 잡으며 상고할 것임으로 기존에 이해하는 부분들과 다른 부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도행전을 함께 읽어가면서 미심쩍은 부분들은 준비했다가 질문을 주신다면 기쁘게 응할 것이다.

우리 교회의 새로운 원년이라고 여겨지는 올해부터 더욱 말씀과 성령에 충만한 교회와 주님의 백성들이 되기 위하여 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주시는 도전과 교훈을 읽고 묵상하고 상고하여 말씀의 증거와 함께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주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