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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2:25~36 2008-02-24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것을 보면서 듣고 오해하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천하 각지로부터 온 유대인들의 판단과 같이 세속적이고 죄악 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한 주님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계신 예언의 성취인 동시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임을 구약의 예언들을 인용하면서 증거하고 있다.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성령의 오심에 대한 사실을 지난 시간에 증거 했다면, 앞에서 증거 한 말미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서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역사를 증거 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부활의 구약적 예언의 사실들을 시편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확신으로 고백하고 있다.

특히 당시의 두 부류의 큰 종교 지도자들로서 바리새인들과 함께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도하고 있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들이 가장 존경하고 있던 신앙적 지주였던 다윗이 예언한 중요한 언약의 성취라는 사실을 시편의 글들을 인용하여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죽어서 장사 되고 무덤에 있지만 그 믿음의 선조였던 다윗의 고백은 천년여가 지난 일세기에 이루어졌음을 확인한다. 결국 다윗이 자신의 후손을 통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는 지속되는 이 역사 속에 죽으면서도 소망을 가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이루어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다윗은 죽으면서도 마음에 기쁨과 입술의 찬양과 썩을 육체지만 소망을 품고 죽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다윗의 고백은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요 고백이 된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죽었으나 오히려 말하고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단순히 안식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 하거나 서러워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여러분 모두도 장래의 영광의 약속을 다윗처럼 확신함으로 같은 소망과 기쁨이 충만한 …



Ⅰ.다윗을 통한 부활의 예언을 인용.(25~28; 시16:8~11)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이 말씀은 시편16:8~11의 자유로운 인용으로 하나님을 의식하여 찬양하는 내용인 동시에 메시야 예언의 시(詩)이다.

비록 옛 언약 속에 살 던 다윗이었지만 역시 신앙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식하여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고백을 이 시편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라는 고백은 다르게 말하면 ‘내가 항상 주님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神前意識] 주님 앞에 삶의 자리를 세우는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항상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자세이고 이것을 또 다르게 표현하면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늘 장막을 옮길 때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제단을 쌓는 모습을 일생동안 계속한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이러한 고백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유혹하는 주인의 아내에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b) 요셉은 그의 주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더 경외(敬畏)하기 때문에 범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가인의 살인이 있은 후 하나님을 잃어버린 죄악의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에녹에게서 본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창5:21~22)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라는 고백이 “…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하나님을 현장에서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요동치 않도록 붙드시며 의로운 보호자로 우편에 계셔 주시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당연히 그 결과에 있어서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26) 이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현장감 있는 감격의 모습을 증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 숨이 막혀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73:28)는 고백을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8)신 당부는 하나님이 외로우셔서 그러시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존적으로 모든 것이 충만하셔서 섬김을 받거나 위함을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그것은 전혀 사람을 위해서 이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25) 고백했던 다윗은 그 결과가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26) 라는 기쁨을 고백하게 되는 것을 본다.

이 기쁨의 모습을 그대로 나눠보면 ①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②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③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①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마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시는 우리의 좌소(座所) 라고 한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계실 때 그 마음은 기쁘고 밝을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결과는 역시 ②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③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로 진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입술과 육체는 결국 우리의 내면 즉, 마음에 가진 것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7) 이것은 물론 메시야의 고백이지만 육체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이유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썩을 육체가 아니고 더러운 육체가 아니다.

바울 사도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15:51~53)고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바울을 비롯하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사실을 많이 듣고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지만 다윗은 그런 정보를 접한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백을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고백을 이제 다음 절에서 말하고 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28) 주님을 면전에 의식하며 살았던 다윗은 죄악의 세상에서도 요동치 않게 우편에서 붙듦을 받았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여 입술에 찬양하는 삶과 함께 비록 죽어 무덤에 갈지라도 먼저 썩지 않을 메시야로 통한 부활을 소망할 수 있다는 예배의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렇게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었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다가 갔다.



Ⅱ.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29~32)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두 번째 부분은 베드로의 다윗의 기록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 말씀이 현실이 된 것을 직접 목격한 자신의 고백의 선언이다. 다윗은 분명히 죽어 장사 되었고 그 무덤이 이스라엘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아는 대로 그 때까지 그들 가운데 존재했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30) 다윗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목격했던 그리스도를 그의 후손에서 나게 하실 것을 미리 약속 받았고 그가 비록 자신의 자손 중에서 난다고 할지라도 위에 앉을 메시야임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윗을 ‘그는 선지자’라고 인정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나눴던 말씀처럼 선지라라는 말은 ‘미리 보는 자’ 라는 의미라고 했었다. 오늘의 시대에 아직 오지 않은 말세를 당겨서 보고 말하는 것처럼 다윗을 약 천년의 세월이 지나서 오실 메시야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고로 베드로는 그를 선지자 아니, 위대한 선지자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31) 사실 몇 번씩이나 있었던 일은 다시 있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다.

다윗도 분명히 이 두 부류 중에 하나였을 것인데 베드로는 지금 믿음의 조상인 다윗이 항상 하나님을 면전에 모시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자신의 후손으로 이 땅에 나실 메시야가 무덤에 버려지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부활의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는 사실을 오순절에 천하각지(天下各地)에서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결정적인 고백을 하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 “이 예수를”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고 존경하는 그 다윗이 증거하고 있는 “이 예수를” 바로 ‘다윗이 의식하며 기뻐하고 찬양하며 소망으로 고백했던 그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라고 증거하고 그 일은 바로 자신들이 보고 들은 증인들이라고 선언한다.

이래서 이미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던 약속은 성령의 오심을 증거하면서 이미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선언하듯이 “…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행26:26) 다윗이 믿음으로 미리 보고 고백했던 그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은 듣는 사람들이 믿던 안 믿던 이제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장래 일을 다윗처럼 알게 하실 것이고 또, 그 고백과 함께 비록 죽었을지라도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살리는 영으로서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실 것이다.



Ⅲ.베드로의 이스라엘을 향한 복음증거의 결론.(33~36)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아직도 의구심으로 바라다보는 수많은 군중들을 향하여 이제 베드로는 결론적인 말씀을 증거 한다.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이미 아버지로부터 보내실 성령을 말씀하셨고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15:26)

그 보혜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임무교대 임도 말씀하신바 있다.“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 오순절 날 천하각지로부터 와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받들어 섬기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다윗의 예언대로 예수를 부활케 하시고 높이 올려 자신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이 지상에 계실 때 약속하셨던 성령께서 오신 모습이 바로 자신들이 배우지도 않은 신비한 언어들을 말하게 하신 역사라는 것이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34) 그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친히 증거 했던 다윗은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지만 그의 시편을 다시 인용하여 이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바로 메시야 예언의 대표적인 다윗의 시로 시편110:1의 인용이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5)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 까지는 다윗의 후손으로 일컬을 수 있었고, 다윗은 죽어 땅에 묻혀있지만 하늘에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더 이상 육신의 후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윗도 [주(主), 헬, 퀴리오스(kyrios)- 최고의 통치자, 소유주, 주인,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분]로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다윗은 장차 마귀를 멸하시기까지 즉, 이 역사의 종말의 때까지 존귀하신 하나님 우편에 계실 분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한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베드로는 최종적인 선언을 저들을 향하여 선포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6)

이 선언은 그 이후 이 역사가 끝날 때까지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선포해야 할 메시지가 되었다. 베드로는 3:14~15에서도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고 마흔 살쯤 된 나면서부터 지체 부자유자였던 사람을 걷게 한 역사를 보고 놀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도 같은 선언을 한다.

오늘 우리가 전할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너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 땅에서 육신이 잘되고 형통한다는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부수적인 약속들이고 참으로 죄인된 인류에게 필요한 진정한 복음은 ‘너희의 영원히 저주 받을 운명을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으므로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섬겨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정녕, 헬, 아스팔로스(asphalos), 확실히, 분명히] 라는 말로 ‘다윗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전체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란 선언이다. 다윗을 비롯한 ‘메시야를 예언한 많은 선지자들을 존경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이라는 강력한 선언이다.

즉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당신들이 알아야 할 것은 다른 분이 아닌 바로 우리들에게 당신들의 눈으로 보는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라는 선언이고 무엇보다도 ‘이 예수는 당신들이 알지 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한’ 분이라고 저들의 양심을 자극한다.

물론 이 말씀에 찔린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 주에 보겠지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는 회개와 탄식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사도들과 같은 은혜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비록 복음의 달빛 시대라고 하는 율법 시대였지만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라고 ‘내가 항상 주님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다윗의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요동치 않도록 붙드시며 의로운 보호자로 우편에 계셔 주실 것이다.

이런 주님을 의식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계셔서 그 마음은 기쁘고 밝을 것이고 그러한 결과는 자연스럽게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고 그러한 결과로 그러한 사람의 육체는 희망에 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산 제사의 삶이다.

또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고 이 역사에 일어날 하나님의 일을 미리 보게 하심으로 바른 예언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하늘의 속한 사람이 증거 해야 할 복음은 죄의 절망의 상태에 있는 인류를 위한 예수의 구속의 십자가와 부활, 드리고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시고 다시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로 증거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 이러한 삶과 증거를 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윗과 베드로를 계승하여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의식하며 살고 증거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