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행 21:27~40 2009-06-07
이 사람은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이방 세계의 전도를 마치고 이방교회가 헌금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에게 전달하고 선교보고를 하고 혹 있을 수 있는 유대인들의 오해를 인한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 하기 위하여 사도들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정결예식을 성전에서 행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오늘부터 읽게 되는 내용부터가 바울 사도의 시련기록으로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이다. 21:27~23:22 예루살렘에서; 23:23~26: 가이사랴에서; 27:~28: 로마행과 로마에서의 복음을 위한 희생의 기록들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의 문제를 일으키는 주인공들은 사실 하나님을 알고 율법을 아는 신앙에 철저하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행동은 전혀 신령치 못함을 보면서 바른 신앙의 중요성을 다시 의식하게 한다.



Ⅰ. 십자가 없이 바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27~29)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체계적인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구원의 최종적인 결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임에도 완성 없는 종교의 모습이 이렇다.

1. 자긍심과 열심은 있다.(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그러나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2~4)

2.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며 선동적이다.(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이다”

“이 사람은 각처에서 ①우리 백성과 ②율법과 ③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이다” 이 세가지는 유대인들의 자존심이자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3. 사실이 아닌 짐작으로도 행동하고 말한다.(28b~29)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Ⅱ. 때로 하나님은 불신자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일군을 구하신다.(30~36)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

사실에 있어서 바울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자신들이 받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메시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복음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로를 구세주로 확증하고 증거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굶주린 형편까지도 해결해 주려는 진전한 애국자임에도 이것을 이해하기는커녕 대적하고 죽이려 하는 살벌한 동족 유대인들 속에서 바울을 구해낸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의 천부장이었다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던 동일한 군중은 바울을 죽이려 했다.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31)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32b)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35b)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감이러라”(36)

2. 진리를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은 이방세계의 소란과 다름이 없었다.(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19:28~34의 에베소의 은감색들이 일으킨 소란과 다름이 없다. 32“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3:14~16)

그렇기 때문에 진리에 서지 못하는 신앙는 은혜라는 이름으로 감정에 의해서 무서운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자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을 사용하신 일은 역사 속에 더러 있었다. 자기 동족의 손에 맞아 죽게 되어 있는 바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방 로마의 천부장에 의해서 구원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일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이스라엘을 바사왕 고레스를 사용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일꾼을 죽도록 버려 두지 않으시고 불신자의 손을 빌어서라도 이렇게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Ⅲ. 천부장에게 비친 바울의 모습.(32~40)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이러한 동족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바울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결박했던 로마의 군인인 천부장은 객관적인 눈으로 바울을 점점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와중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속히 자유를 얻는 것보다는 저 가련한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해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으로 시작하여 복음을 전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것은 바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1. 소란을 피우는 귀찮은 사람으로 생각했다.(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당시에 로마의 정치권력 아래서 가장 골치를 앓게 하는 세력 중 하나가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성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는 진영이 있었고 예수께서도 심문을 받으시면서 바울이 들려 올라간 계단을 오르내리셨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 이단자로 생각했다.(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이런 경계는 이미 앞에서도 언급되었던 사실이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5:36~37)

3. 바울에게 점점 놀라고 있는 천부장을 보게 된다.(37)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22:27~29)

이것은 사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뵐 때 가졌던 진전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에게 이런 이해를 갖게 해야 할 것이다. 점점 다가오면서 신뢰를 보이고 구별됨을 나타내는 믿음의 삶이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되어야 할 것이다.

4. 이런 소란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하나님의 사자를 본다.(39~40)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아마도 바울이 자신의 로마시민인 것을 처음부터 천부장에게 밝혔다면 천부장은 더 빨리 바울을 이 소용돌이 속에서 빼내줬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모여 소란을 일으키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나중에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앙을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면 폭도 노릇을 할 수 있고 불확실한 것에 시간과 물질을 바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겪는 어려움과 안타까움이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바른 백성과 일꾼이 되려 한다면 주님처럼 은혜와 진리로 충만함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주님께 필요하다고 하면 불신자를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충성된 일꾼의 신변을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울처럼 막다른 위기에 봉착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주님의 필요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입견으로는 바른 신앙의 사람들을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는 자로 또는 이단자로 귀찮은 존재로 잘못 볼 수 있지만 진실히 믿고 주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주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다가간다면 오늘 천부장이 바울을 보듯 점차 하나님의 빛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