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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내용은 오늘 날의 표현을 빌린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신앙간증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그 신앙 간증을 듣기 위하여 사람이 모여 귀를 기울이는 형편이 아니라 오히려 거절하고 귀를 막으려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앙간증을 하려고 하니 얼마나 안타깝고 힘들었을까 짐작이 된다.
바울은 그렇게도 원하고 사모하는 동족들에게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소개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렇게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자신이 주님을 만난 경험을 고백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입을 열어 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증거하지 못하고 중단이 되지만 변함없는 소신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하는 평시의 소신이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Ⅰ. 예수 그리스도 없는 삶의 고백.(1~5)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유대인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대속의 십자가를 맛보지 못한 신앙의 삶을 고백한다.
1. 예루살렘에서 자라며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다.(3) “나는 유대인으로 ①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②이 성에서 자라 ③가말리엘(5:34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
이스라엘 모두가 일년에 3번이라도 와보고 싶어하는 예루살렘에서 자랐다. 요즘으로 말하면 유학을 한 샘이다.
2. 율법과 하나님께 열심을 가졌다.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바울 사도의 자존심과 열심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것이었다.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고후11:22)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1:14)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
3.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4~5) “내가 ①이 도를 핍박하여 ②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③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이 사도행전7:54-60; 8:1-3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러한 고백은 바울의 글들에 더러 더러 나타난다. 26:10; 고전15:9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갈 1:13, 23;빌 3:6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딤전1:13f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15b…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일을 위해서는 장소와 시간을 상관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바울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유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에는 기쁨도 감격도 없이 때로는 마음의 가책과 힘겨움만이 그가 느끼는 전부였을 것이다.
Ⅱ. 구세주와의 만남의 경험.(6~10)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중요한 만남의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9:3~7]
1. 예수 그리스도는 사울이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큰 빛이셨다.(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딤전6:16)
2. 주님의 음성은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었다.(7~9)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3. 완전히 굴복되고 만다.(8f~10)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Ⅲ.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인도의 경험.(11~16)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주도권을 뺏긴 이전과는 다른 삶의 경험이었다.
1. 주님께 끌려 갈 수 밖에 없었다.(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2. 주님의 보내신 자를 만나게 하시고 지도를 받는다.(12~13)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3. 증인이 되게 하셨다.(14~15)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①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②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③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4. 도전을 주셨다.(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바울의 성장과 교육은 대단히 긍지를 가질만한 환경과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만족은 없었고 분주함과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이 땅에 모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서의 삶이 사실 이와 같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에게 감사나 만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고 사실 이것을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각자가 경험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상황과 내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만난 경험이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그분께 철저히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고백은 자신이 자신 있다고 큰소리 치며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던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한결같은 변화는 자신이 주도하던 삶을 그만두고 주님의 인도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완벽하고 성결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던 바울에게 거듭남의 도전을 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끝없이 도전할 것을 명령하신다. 내 말씀과 약속 안에서 끝없이 세상에 도전하고 영적인 일을 위하여 도전할 것을 당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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