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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22:17~30 2009-06-21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오늘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 바울의 동족을 향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지만, 하나님의 평화의 도성이라고 하는 예루살렘이 전혀 예루살렘답지 못하고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혀 그들이 섬긴다는 주님의 성품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8:44f) 하신 것처럼 오히려 마귀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바울을 대우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바른 통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름뿐인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도성 예루살렘에서 보게 되고 이러한 모습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어 오늘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경계로 깨닫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21장의 마지막 부분과 이 22장의 뒷부분이 매우 비슷하면서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큰 반전이다. 21장에서는 소동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어렵게 복음을 증거하려는 모습이고 오늘 읽은 22장에서는 천부장에게 자신이 로마의 시민임을 밝히고 공식적으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변호를 시작하려는 모습이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17~21)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자신들의 동족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힘입게 되기를 소원하면서 자신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함으로 그들을 설득해 보려고 기회를 얻어 호소해 보지만 이미 심령이 뒤틀린 사람들은 끝까지 들어주는 것 조차 불가능함을 보이고 있다.

1. 영적인 사람 바울은 여전히 이곳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로 지시를 받는다.(17~18f) 어디서나 자신의 의지대로보다는 주님의 지시에 따랐고 성령께서 주시는 이상을 따랐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에서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주님의 계시를 받는다.

“…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17b~18) 결국 이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어느 특별한 장소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에게라는 사실을 배운다.

2.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서 하나님의 종은 나가야 했다.(18m) 이것도 이상 중에 들은 성령의 음성이었지만 구별된 도성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의 경건한 사람들이 머물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곳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히려 이 도성에 어울리지 않는 바울을 나가도록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7)는 호소와 같은 경계이다.

3.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18b) 누가 증거하든 하나님의 진리는 들어야 살 수 있다.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패역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기뻐할 리 없었다.

4.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21) 저들이 외면하고 거절하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에게 가게 된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롬10:20)



Ⅱ. 하나님의 선택 받았다고 하면서 전혀 하나님의 성품을 갖지 못했다.(22~25)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최소한 사연을 끝까지 들어 주는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변명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번 선동된 군중들은 생각의 여지도 없이 죽이자고 소리를 높이고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와 같은 회개의 슬픈 행동들을 자신의 죄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자고 하는데 동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평가는 고사하고라도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아니다 싶다.

여기에 나타나는 일련의 모습은 바로되지 못한 종교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1. 살리기 위해 주신 교훈이 사람을 죽이려는 데 쓰인다.(22)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이러한 놈은 ①세상에서 없이 하자 ②살려 둘 자가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반응으로 쉽게 말하면 죽이자는 심산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시고 복음을 주셨다. 그럼에도 그 신앙이 바로 되지 못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정반대의 모습을 바울을 죽이려고 큰소리치는 바울의 동족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미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를 받았을 때도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9:29)

2. 자신들이 회개하고 재에 앉아야 할 모습을 오히려 상대에게서 요구한다.(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자신이 탄식해야 할 자세를 진리에 대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자신들은 끝임 없이 남을 미워하는 살인죄를 지으면서 표면적으로 나타난 간음 중에 잡인 여인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려고 끌고 왔던 저들이었다. 우리가 여전히 율법을 고집하거나 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3. 권력조차도 이러한 잘못된 판단에 놀아난다.(24~25)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어쩌면 이것은 대단히 흔하고 쉬운 일이다.

세상의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이 세상의 약자들을 봐주거나 위해주지 않는다. 언제나 강한 자의 편에서 강한 자의 손을 더 강하게 지탱해주는 안타까움은 언제나 바뀌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Ⅲ. 로마의 시민, 하나님나라의 시민.(26~30)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1. 당시의 침략자들조차 얻으려 했던 로마의 시민권.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는 나면서부터 갖게 하셨다. 이 로마의 시민권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준비케 하신 것들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었고 사실 바울이 당시의 모든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가진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귀중한 시민권은 생명록 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허락하실 수 있다.

다만 단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만이다.(마6:33)

3.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살아야 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2:14~16)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28) 당시에 세계를 어려움이나 거침이 없이 다니려면 로마의 시민권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천부장이라는 지위까지도 모자라서 돈을 많이 주고 샀다고 말함을 듣는다.

또 바울 같은 사람은 나면서부터였지만 이 로마의 천부장은 돈을 많이 들여서 살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자유로운 시민 권이니 얼마나 불공평 한가(양반매매). 오늘 날도 세상에 살기 좋다는 나라들에 이민을 가려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아니면 돈이 많아야 가능하다.

물론 바울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면서부터 주셨지만 말이다. 그러나 돈으로나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천국의 시민권이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이세상의 어떤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지만 그것은 사실 육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시민권 즉, 생명록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가치를 잃지 않는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천국의 시민권이 얼마나 귀하면 주님께서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하실까! 그것은 귀신들도 항복할 수 밖에 없는 권세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Con. 주님께서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18:37b) 하셨고 듣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하신 것처럼 사실 바울의 동족에 대한 애절한 호소는 더 이상 그들에게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오히려 의로운 사람을, 자신들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던 것처럼 또다시 그의 충성된 종인 바울을 죽이자고 같은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잡혔을 때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숨긴 것은 자기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미 그것이 의미를 잃은 이상 그 악한 세력과 야합하는 로마의 천부장에게 자신의 로마시민임을 선언한다. 세상권력은 자신보다 높은 권력 앞에 여지없이 낮아지는 모습을 또 한번 보게 된다.

당시에 로마의 시민권이 힘이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역사 앞에 힘을 잃게 되었지만 영원에까지 권세가 있는 천국의 시민권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사주셨기 때문에 돈을 많이 들이거나 권력이나 힘이 있는 세력에게 가 아니라 단순히 십자가를 순종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하늘나라의 시민다운 권력을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밝게 빛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