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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행 23:23~35 2009-07-12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알게 하기로...  
우리는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 구원의 역사를 기술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다양한 기록들을 접하게 된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특히 군대와 작전의 이야기들은 구약의 다윗 시대에도 상당히 자주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그것을 회복해 가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성령의 행전이자 구원의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는 주제의 기록 속에 또 하나의 유별난 사건을 오늘 우리가 읽게 된다. 로마군인들로 이루어 지고 있는 이 특공작전명은 ‘바울의 가이사랴 호송작전’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긴박하고 조밀한 군대의 조직적 움직임을 본다.

그런데 이 내용이 사도행전 성령의 행전인 이 책의 내용에 어울리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 동족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 바울을 로마의 군인이 오히려 구해내서, 보다 공평한 재판을 받게 하려고 헤롯 대왕에게 보내는 이 작전이 어찌 보면 같은 범죄로 죽을 처지에 있는 우리를 마귀로부터 구원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헌신과 희생에 견주어 생각한다면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로 처리해 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시건 속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중심인물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기보다는 바울 사도 한 사람을 중심 하긴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로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도 조금은 의아하게 여겨지지만 다른 면에서 한 사람의 하나님의 일꾼이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역사에 때로는 이만큼 관련 없는 듯한 수많은 권력과 힘이 사용된다고 하는 데서 구약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키 위한 바사(페르시아) 고레스 왕과 당시의 정치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그림자적인 기록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역사의 흐름은 나타나는 외면의 세계는 어떤 기술과 정보 그리고 국가권력이 주도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세계에서는 이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여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 보통사람들은 볼 수 없는 역사를 넘어서는 구속 중심의 초역사(超歷史)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하나님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이며 교회의 역사요 성령의 역사라고 믿음의 사람들은 고백한다.

그렇다면 오늘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못지 않는 수많은 권력과 정치 경제적인 힘을 다 사용하여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주님의 역사가 비록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

이렇게 볼 때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라고 볼 때 그 모든 것은 나 한 사람을 구원으로 호송하고자 하는 주님의 도구들이라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바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라고 할 때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영적인 논리를 가지고 이 내용을 볼 때 단순히 나타나는 모습이 다 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섭리를 더 깊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 말씀의 이해가 되었으면 한다.



Ⅰ. 바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한 병력…(23~25)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간교한 정보를 접한 천부장은 그 군인의 생태에 맞게 로마시민인 바울을 유대인들이 전혀 손댈 수 없는 시간과 도구에 의해 그들 로마의 통치권력의 중심지인 가이사랴로 이송할 것을 즉시 명한다.

지휘관으로 두 사람의 백부장을 지명하고 무려 470명의 군인을 전담요원으로 선발하여 이 일을 수행하도록 지시 하는데 지난 주의 말씀의 마무리에 연결 되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보게 된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22)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천부장에게 전달한 바울의 조카의 신변에 대한 위험성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이러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알았다면 바울을 죽이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경계하고 즉각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23) 장교 두 사람과 유대인들의 시간대로 세 번째 시간대 즉 밤 아홉 시 야심한 시간에 이 작전을 수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어느 장군의 행렬에 버금가는 400명의 일반 병사와 기마병 70명을 호위하게 하여 위험으로부터 바울을 완벽하게 보호하게 하는데 사실 이 일을 하는 천부장은 바울을 존경해서이거나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뿐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로마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11)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 천부장은 자신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역할 할 뿐이었다.

바울의 안전을 위해 준비한 것은 군인들이었지만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24) 비록 400명의 군인은 걸어서 안디바드리(31)까지 5~60Km의 거리를 행군해 가지만, 바울은 짐승을 태우는 것도 특별한 천부장의 배려였다. 물론 이것은 그가 로마 시민이라는 이유였을 뿐이었지만 역시 바울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조밀하신 섭리였을 것이다. 인생이 고난 당하는 것은 결국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 분께 충성하려는 일꾼이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성경 속에 자주자주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Ⅱ. 바울을 보내는 이유.(26~30)

위의 내용이 잔전계획이었다면 여기에서는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호송하는 이유를 기록한 편지의 내용이다. 물론 천부장이 총독에게 써 보낸 편지의 전체 내용은 아닐지라도 전체적인 요지의 내용을 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또 이 편지의 내용 역시 대부분 바울이 교회들이나 그의 사람들에게 써 보낸 형식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당시의 일반적인 편지 형태(발신인, 수신인, 문안, 내용 - Heb., 1Joh.)이다. 특이한 것은 이 천부장의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은 라틴어이고, 성은 헬라어 인 것이 독특하다.(Klaudios )

그러나 이 편지의 내용에는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나 자신의 공적을 나타내려는 내용이 더러 보인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27)

로마사람인 것을 확인도 하지 않고 가죽 줄로 묶고 채찍질하려 했던 사실은 감추고 앞뒤를 바꾸어서 보고하는 다소 과장된 내용이 보인다. 사실 이것이 세상 정치인들이나 군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실책은 감추고 공로는 부풀리는 것은 1세기 때나 21세기 때나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28~29)

산헤드린 공회의 참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자 바울의 무죄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다.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율법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 천부장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로마의 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종교적인 문제였을 뿐이라는 의견과 함께 “…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유대인들은 정죄하여 죽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총독 빌라도는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눅23:22,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v14; “…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19:6]는 고백처럼 유대인들은 40명이나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도 않겠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고 아우성치는 바울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있는 사람도 역시 로마의 천부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30) 철저한 증거주의 신문에 의한 판결을 하는 로마 법 상,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라는 막연한 증인은 사실 호소력이 없는 의견이지만 이러한 바울 소송의 내용이 총독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역시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신앙적인 호소는 세상법정이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없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호소한 경우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1)

신앙적인 부분들은 사실 불신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기고 지는 세상법정의 판단에 앞서서 하나님께 누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6:7)고 호소하는 것이다.

국가 앞에 주님의 제산의 보호문제나 불명예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지 못하고 욕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재판을 의뢰하는 것보다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났다.”는 호소이다. 세상의 법정은 절대로 진리의 판단을 해 줄 수 없는,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주님과 교회에 욕이 되게 하는 것보다 났다는 말씀이다.

천부장이 총독에게 써 보낸 바울 호송의 문제는 주님과 달랐다. 세상의 이유는 곧 신앙의 이유가 아니다. 우리의 진리와 생명의 문제는 교회 속에서 말씀과 성령과 경건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유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철저히 주님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



Ⅲ. 호송작전의 성공.(31~35)

400명의 군인들이 밤 9시부터 걸어서 유대인들의 위험이 미치지 못하는 예루살렘 서북쪽으로 56Km 정도의 안드리바드리에 도착하자 다시 예루살렘 영문으로 돌아가고, 짐승을 탄 바울과 70명의 기마병들은 마침내 가이사랴까지 39Km의 거리를 거쳐서 총독에게 이르러 천부장의 편지와 바울을 인계한다.

총독은 천부장의 보고서를 받은 후에 바울에게 기초적인 심문을 한다.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34) 자신이 감당해야 할 재판임을 확인하고 그들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이 올 때까지 로마의 시민에 대한 예우로 헤롯 궁에 지킨다.

이렇게 해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헛된 맹세를 하던 살벌한 유대인들로부터 바울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고 바울은 동족들보다는 이방의 고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자 새로운 복음증거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다음 시간부터 보겠지만 24장에서부터 26장까지에 기록되고 있는 대로 이 가이사랴에서 약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로마로 가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게 된다. 또 이 가이사랴에서 역시 자신을 고발하러 온 자신의 동족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설명 하면서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 아그립바 왕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기회도 가지게 된다.

상황적으로는 바울을 죽이려는 간악한 유대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바울에게 또다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라는 이상을 보여주신 주님은 그 새로운 사명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손을 빌어서 유대인들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방법과 사람을 동원하여 바울을 완벽하게 구원해내는 역사를 봤다.

그러므로 바울이 살아서 가이사랴까지 가게 된 이 특수 작전은 로마의 천부장의 작전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매여 있음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은 세상이 어떻게 부패하고 변해가든 주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이 역사 속에 가장 귀중한 하나님의 자신의 백성들의 천국에로의 호송 작전이시다. 이 작전에 바울처럼 자신을 기꺼이 맡기는 주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완벽하게 이끄실 것이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의 대적이 되어 죽을 뻔한 바울 사도의 현장감 있는 구원의 역사를 보았다. 비록 동족들은 죽이려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이방인의 손을 빌어 구원하는 역사는 눈으로 보기에는 로마의 천부장이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며 계획하고 이루었지만 그 일을 준비하고 이루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바울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고백하여 기록하기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오늘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불리한 일들도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리할 지 모르지만 그 일의 뒤에서 역사하고 계신 우리의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오리려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실 것이다. 다만 우리가 온 맘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경외한다면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래서 보이는 불리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고 이것은 바울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믿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