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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분쟁의 원인은 사람을 추종하는 데서 생기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모든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있다는 데서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자연이건 사람이든 은사이든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향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 이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대한 결론이자 당부이다.
바울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과 그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는 주제를 갑자기 바꿔서 앞에서(1:17~2:16) 줄곧 다루어 왔던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 다시 말하면서 사람은 세울만한 것이 결코 없으며 아무리 위대하다는 사도일지라도 하나님의 뜻 즉,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불러 들이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소유물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것이지만 고린도교회를 비롯해서 이 땅에 살아가는 구원받을 또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선언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사도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종들은 물론이고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미래의 것을 비롯해서 사망과 생명까지도 주님의 백성들의 소유가 되었음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는 주님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속해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체계를 통해서 우리 믿음 속에 있을 수 있는 분쟁의 모든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의식한다면 사라질 수 있다는 신비한 사실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을 통한 가르침은 최종적으로 우리가 [어디서 와서 → 어디에 있으며 → 어디로 가는가?] 라는 것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우리는 물론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미 1:30에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는 말씀 속에서도 가르친 바 있다.
이러한 자신의 바른 인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가치를 바로 알 때 우리는 다투고 있을 수도 없고 성전인 우리 자신을 더럽힐 수도 없고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도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어서 비로소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증거되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성전 된 우리자신과 세상과 구별되어 우리가 가는 미래의 방향과 목표를 다시 점검하는 …
Ⅰ. 누구든지 자신을 속이지 말라.(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사람이 과연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 속여도 진실할 수 있다면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또 다른 속일 수 없는 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결국 속인다고 하는 것은 이미 자신을 자신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이요,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적어도 하나님을 제대로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속이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고 특히 하나님의 앞에서 살고 있는 의식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은 기본으로 의식하는 사실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여기서 경계로 주는 당부는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인데 성경 속에서 자신이나 스스로를 속인다는 표현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①“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어떤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갈6:3)
②“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로마서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마태복음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③“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18b) 했는데 이것은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독선에 대한 경계의 교훈이다. 같은 고린도전서8:2에서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실 이 말씀은 구약에서부터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렘8:8~9)
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이요,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 모두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겸손으로 내려앉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
Ⅱ.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다.(19~20)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이미 바울은 죄악에서 나오는 인간의 간교한 지혜를 지적한 바 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1:19~20)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항하는 간악한 지혜에 대해서 성경은 줄기차게 지적을 하고 경계를 주고 있는데, 먼저는 바울이 인용한 말씀부터 보면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욥5:13)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시7:15),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94:11) 하신 말씀들은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20) 말씀과 다르지 않다.
바울은 지혜 있다고 큰소리 치면서 그 지혜의 결과는 결국 어리석은 일들만을 만드는 인간지혜에 대하여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2~23)고 책망하고, 지혜의 애창지인 이 고린도를 향하여 계속해서 같은 경계를 하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2)
예루살렘의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갈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거역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9:23~24)고 경계하셨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하셨는데 여기 “꾀[헬, 파누ㄹ기아(panourgia), 사기, 교활, 간교, 교묘, 못된 짓]”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진다.
성경의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든다면 압살롬의 반란 때 모략꾼인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 압살롬이 왕이 된 것을 기회로 자기의 출세를 노리게 되는데 [12,000 명의 사람을 택해서 오늘밤 다윗의 뒤를 추적,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 다윗 왕만 쳐죽이면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올 것] 성경은 이 모략을 표현하기를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삼하16:23)고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윗이 [후새] 라는 사람을 성에 두고 나오긴 했지만[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모으고, 어느 성에 들갔던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가라앉혀야 한다.] 이 사람의 모략은 도저히 아히도벨을 넘어설 수 없는 정도였지만 알살롬과 아히도벨의 악함을 아신 하나님께서 결국 압살롬으로 하여금 전혀 가치가 없는 아렉 사람 후세의 어리석은 모략을 채택하게 하여 망하게 만들고 말고 결국 바로 다음 장인 17:23에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라는 기록을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 간악한 지혜를 기뻐하실 리가 없고 결국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지혜 때문에 자신을 죽음의 올무에 걸리게 하심을 보면서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는 것을 실감케 된다. 스스로의 얕은 죄악 된 지혜보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의지하여 삶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에 사는 …
Ⅲ.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한다.(21~23)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사람은 아무리 거룩하고 신령하다고 해도 결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어떤 선하고 충성된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 오히려 그들의 이름이 이용을 당하는 것들도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보아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21f) 당부하면서 좀더 나아가서 선언하기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하고 고백하고 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1b) 이제 바울은 독자로 하여금 눈을 하나님의 전 피조 세계인 만물을 보게 한다. [만물, 헬, 파스(pas), ]에 해당하는 헬라어 의미는 ‘모든, 모두, 온~ all, whole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도자인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결국 이 우주 속에 존재하는 보이는 것이든지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있다는 이론이 되는데[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의 백성들을 떼어 낼 수 없다는 확신을 주면서 강조한바 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바울의 겸손을 여기서도 보게 되는데 자신을 하잘것없는 피조물 속에 포함시켜서 강조하고 있고, 결국 자신도 너희들의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은 끝나지 않는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23) 언제나 결론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일컬어 “너희의 것이요!” 했던 바울은 홀연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울의 고백과 신앙이 있고 우리의 삶의 가치와 목적이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결국 오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의 주인이나 주체는 우리 각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또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이라야 영원을 말할 수 있고 영생을 말할 수 있다.
나 하나로의 생명은 결국 이 역사의 소비물에 불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그것의 완성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과 믿음으로 살아서 분쟁과 죄악보다는 순종과 화합과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고 영원영광에 나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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