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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늘과 땅은 물론이고 어둠 속에도 결코 자신이 숨을 수 없는 이유는 주님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완벽한 이해가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어디로 도망을 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이미 계시기 때문에 숨을 곳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예배 드리는 장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밖의 우리가 움직이는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배 때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이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말하는 제 말이 부담감이 된다면 자신의 신앙의 삶을 반드시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복을 훔쳐 받고 외가로 도망하는 가운데 알지도 못하는 벌판에서 잠을 청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라고 고백하면서 비록 형 에서의 진노의 낯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피하여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24)고 어디에나 충만이 계신 자신을 계시해 주고 계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힘이 되고 감사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니”(사43:2)하셨는데 이러한 말씀들은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충분이 검증이 되어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디든지 계신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부담스럽게 느끼기보다는 감격과 기쁨으로 누려야 할 것인데 사실 모든 사람들이 인종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두렵고 부담스러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감사와 의지할 능력의 존재로서 항상 주님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피 흘리시고 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시다.
아무리 두렵고 힘 샌 아버지일지라도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먼저는 그의 자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어떤 처지나 형편에 상관없이 즉시로 도움을 구하고 힘입을 수 있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누리는 …
Ⅰ.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차이일 뿐이다.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일 뿐이다. 바울 사도는 아덴의 철학자들 앞에서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7) 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핑계할 수 없는 증거들을 주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그러나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자연 자체를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다. 주로 불신자들 속에서 이런 생각들을 보는데 그래서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서 소원을 비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곧잘 보게 된다.
우리가 진정한 창조주요 구원의 주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쁜 짓을 해도 들키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숨어서 부모들이 금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을 보는데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신앙의 어린 상태의 사람들도 그렇다.
예배에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면서 세상 속에서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이중적인 삶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음을 본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공기가 있는 것처럼, 전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계신다. 아니 어떤 곳에는 공기가 없는 곳도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 만약에 산소가 없는 곳에 있으면 사람이 죽는 원리만큼이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자신의 만드신 세계에 끊임없이 자신을 나타내시고 이런 것들이 그분을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살아계심과 자신의 형상을 가진 독특한 피조물인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모양과 여러 방법으로 나타내시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말미암아 말씀하셨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이왕에 어디나 충만해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확신하고 의지함으로 인도와 사랑을 넘치도록 누리는 …
Ⅱ.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힘과 능력이 된다.
OT에는 믿음의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던 하나님을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시16:8~9)라고 고백하며 항상 자신이 흔들릴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비록 죽음의 상황에서도 사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증거하는데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이 복음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하여 완성된 복음의 시대에는 그의 약속대로 거듭나서 그분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성령으로 와 계시는 더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마28:19~20; 행2:38)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9~11)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6:19)
이런 이유에서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라고 고백하는 다윗의 고백이 실감이 나게 되고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는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되기 때문에 두려움을 모르는 삶이 되게 된다.
신앙의 사람들이 항상 함께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데 찬양이야말로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게 하는 고백이 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우리 속에 주님을 모신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믿음의 사람들은 온 우주가운데 충만해 계신 하나님께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①내가 염려할 때에 하나님은 나를 안심시킨다. ②내가 실망할 때 나를 격려하신다. ③내가 시험 당할 때 나를 도우신다.
Ⅲ. 부끄러움과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 불편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불신자들조차도 막연히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이 양심을 거스를 때마다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들조차도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 감격의 이유가 아니라 부담스럽고 지켜 보신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아담과 하와처럼 나무 그늘에 숨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암9:2~4)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욥26:6-오늘 본문)
과연 나는 항상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늘 훔쳐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가? 아니면 감사와 찬양의 이유가 되는가? 여기에 답변에 따라 나의 사실적인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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