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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리라는 주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땅을 사도록 하신 후에 예레미야의 고백과 하나님의 응답으로 구성된 있는 말씀이다.
17절에 신앙적 고백과 함께 26~27절에는 하나님의 고백에 합당한 응답이 주어지고 있다.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전능하심에도 왜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20~21) 약속의 가나안에 심으신(22) 이 백성이 다시 바벨론의 포로가 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다.(23)
사실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는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 사람의 구원에 관한 것은 더욱 그렇다. 누가복음 18:26에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우리는 다 무능력하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섬기는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거대하게 보이는 과학과 문화 속에서 이런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이번 한 주 만이라도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시고 그 주님께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므로 이 능력을 죄인 되었던 우리들에게 끼쳐주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나 믿음으로 승리하는 …
Ⅰ.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하나님은 다만 말씀으로 이르시되 “있으라!” 하심으로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로 시작하여 “있으라 " " "!” 모든 삼라만상을 창조하셨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무엇보다도 주님의 전능하심은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으로부터 홍해의 기적과 함께 하나님의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적들을 주시고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기적으로 주셨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반대되는 것들이다. 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6:18f)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예레미야가 탄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Ⅱ. 모든 인류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이시다.(18~19)
(18)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이런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분이시라면 얼마나 비극일까!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절대로 선하시다. 이런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
죄를 이기는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6~7)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우리가 신앙으로 죄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힘입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적인 일을 감당하는 것도 모두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3:7)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①은혜를 베푸시는데 능력을 사용하신다. ②인류의 모든 사람의 인생을 주목하신다. ③그 행위와 열매대로 보응하신다.
Ⅲ. 이미 그 전능하심을 역사 속에 증거된 사실이다.(20~22)
(20)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앞에서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이 있다고 했는데 주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켜내시고 이 언약을 이룸에도 전능하신 능력을 사용하신다. 물론 이 약속을 언약의 백성들에게 믿음의 후손들에게 전혀 오차 없이 지키시는 주님이시고 그러한 능력의 역사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성경 속에서 읽게 된다.
또 이러한 능력의 역사를 믿음의 백성들은 자주자주 증거하는 것은 같은 능력을 믿음으로 누릴 수 있음에 대한 고백이다. 모세는 자신이 경험한 이 사실을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번 증거한 바 있다.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신4:34, 5:15, 7:19, 11:2, 26:8)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21)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2)
이렇게 역사 속에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능력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Ⅳ. 그 능력을 힘입어 살려면…(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앞에서 말한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재앙만을 받는 사실을 우리가 읽은 마지막 절에 증거하고 있다. ①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이사야는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1:19) 엄청나게 강한 전기에 아무렇게나 전구를 가져다 대면 빛이 나는가? 그렇지 않다 정해진 방법대로 연결해야 비로소 빛이 난다. 믿음의 원리도 다르지 않다. ②말씀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8:5) 이러한 약속 성경의 대부분의 약속이다.
이제 이런 부정적인 내용을 역으로 이해하며 말씀을 마무리해 보자!
ⓐ우리 스스로는 무능한 존재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9:29)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시116: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야고보서 3장에서 우리 혀를 인생의 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술의 고백은 우리 삶을 좌우한다고 하는 데서 어떻게 고배하느냐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입술에 고백하는 대로 나아가고 살아야 한다. 놀라운 능력을 맛본 사람들은 느낌보다도 약속을 순종한 사람들이다. 믿음으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감정이나 이성보다 약속에 순종하는 행동이 먼저인 사람들이었다.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여호수아서에서 하나님은 범람하는 요단강에 법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들어서라 수3:8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했고 v15~16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라고 기록되고 있다.
마14장에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어떤 변화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바로 뛰어들었을 때였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28~29)
누가복음 5장의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말씀을 순종하는 행동으로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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