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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주전에 같은 말씀 바로 뒤에서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말씀과 함께 어디에나 안 계시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에 대해 이미 생각한 바 있다. 사실 이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고백을 드리고 있는 말씀이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듣고 보아야 알지만, 그것도 온전치 못하다. 우리의 지식이 제한 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떤 것도 배우고 듣고 볼 필요가 없이 이미 다 아신다. 이런 이치가 역시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분명 주는 그러한 분이시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147:5) 그래서 사람에게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라고 고백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그 고백처럼 살지 못하는 듯 하다.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사실 하나님은 이러한 표현을 넘어서는 분이시다. 벌거벗은 사람의 속을 사람은 들여다볼 수 없어서 X-ray 나 CT(Computed Tomography), 또는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를 통해서 속을 볼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런 기구들이 전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다. 바로 뒤 12절에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사람은 기계를 통해서 속에 뼈와 내장을 볼 수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아직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수없이 그를 경험했던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대상18:9m) 라고 고백함을 듣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를 가까이 섬기며 기쁨으로 섬기는 자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감사의 이유가 되지만 주님 앞에 떳떳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부담감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이 오늘 나에게는 감격이 되는가, 아니면 부담감이 되는가?
오늘 말씀과 함께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 앞에 더욱 주님을 의식하여 가까이 모시고 모든 것을 기도로 맡겨서 빛된 인생이 되기를 …
Ⅰ.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시다.(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를 알고 계신다.’가 아니라 “나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어떤 차이가 있나? 나를 아신다는 사실은 때로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은 믿음 속에서는 큰 위로와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시는데 그 이유를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라고 증거하고 있다. 나를 낳은 부모보다, 한 배에서 난 형제보다도, 평생을 함께 사는 아내보다도, 아니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주님이시다. 이러한 사실이 감사가 되는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일부러 잊으려 하는데 왜냐하면 이 사실이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시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항상 기록하신다. 보는 모든 것, 행하는 모든 것, 생각하는 모든 것, 느끼는 모든 것을 주님은 아신다.
①하나님은 우리의 평생을 이미 아신다. 지나온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아신다. ‘네가 어제 하 일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일,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아시는 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장래를 알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점, 손금, 사주팔자, 생체리듬, 기타 갖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미래를 안다고 하는 것이 유한한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낙심하거나 교만할 수 있다.
어떻게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인생을 어떤 축제의 행렬과 같이 보고 계시는 것이다. 한 지점에서는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높은데 있으면 앞과 뒤를 다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어찌할 줄 모르지만 주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 까닭에 우리를 위해 미래를 준비하신다는 사실이 감사가 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과 실패도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과 실패를 아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을 자백한다면 “나를 믿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라고 추궁하지 않으신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시69:5) 고백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믿음과 고백이 죄를 해결하는데 더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가 죄를 범하려 할 때 사탄은 귀에 대고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유혹하지만 사탄에 넘어간 순간 “~가 알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을 넣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아담은 나무 수풀에 숨게 되었고 죄는 결국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때에 주님은 이미 다 아시면서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고 하나님이 물으실 때는 무엇을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를 바라신 것이다.(요일1:8~10)
②우리의 좌절을 아신다. 우리는 때로 “내가 지금 겪는 이 고통을 아무도 모를 거야!” 라고 탄식하지만 이러한 형편에서도 믿음의 사람 다윗은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하나님이 보지 못하는 나의 아픔은 없다.”(시31:7) 라고 고백하고 있다. 계속해서 다윗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고 절망과 좌절을 십자가에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고 증거 하신다. 사실 이래서 이사야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좌절을 자신이 져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증거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비록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신다고 해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③우리의 두려움을 아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실족될 수 있음도 아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아시므로 당부하신 말씀이 마태복음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런 이유에서 바울을 통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하셨고 다시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고 격려하신다.
Ⅱ.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아시는 분이다.(2~3)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렘16:17)
여기서는 우리의 행동거지의 모든 부분을 아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아시는 분인 동시에 우리의 선한 행동도 모두 아시는 분이시다. 누군가 보든지 보지 않던 상관없이, 다른 이에게 하는 친절한 말 한마디, 배우자에게 사려 깊은 행동, 교우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봉사 등 청소를 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은밀한 섬김의 행동뿐만 아니라 예배시의 자세 하나하나를 보고 계시는 주님이시다.
Ⅲ. 나의 말을 아시는 분이시다.(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심장을 살피시는 분이 당연히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럼으로 신앙의 사람은 필요한 말과 격려의 말을 힘쓰고 하나님 앞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라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23) 이런 당당함은 주님께 마음을 토하는 입술의 고백을 결과할 것은 당연하다.
이래서 주님께서 경계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5~37)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고 경계하였고 주님은 또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12:3) 하셨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는 증거를 아는 야고보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3:8~10)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 때문에 주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을 경계하셨다.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6:1) ‘…기도하지 말라’(5) ‘…금식하지 말라’(16, 18) ‘…거룩한척하지 말라!’(23:5) 사실 이러한 과제들은 신앙인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들이지만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라고 경계하신다.
우리의 삶을 바라 보시며 격려하시는 주님을 의식하는가? ‘세상, 환경, 직장 모든 것은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바보취급할거야!’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나는 네가 행하는 선한 행동을 다 보고 있단다.” 라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려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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