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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다윗이 오벳에돔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매어 들여 놓고(법궤가 들어온 것에 비로소 안심과 감사를) 감격으로 드리는 고백이요 찬양이다.(이전에 수레에 싫어 옮기려다가 웃사가 죽는 경험을 한 후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이유를 대부분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막연한 고백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께 지음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23)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creature, creation)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좀더 깊은 도전은 생명이 없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으로 지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얼마나 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는 권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영광을 돌려드리기 보다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피 흘리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은 고사하고 욕을 돌리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임은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사실이다.
또 쉽게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를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다윗이 선포하는 것처럼 구원을 감사하고, 창조주로 영화롭게 받들며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리며,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가며,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하는 이 말씀과 함께 하는 …
Ⅰ. 예배로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신다.(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로서 창조주를 예배하는 데서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 습성으로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게 된 것이다.
이런 인간 심리를 가장 잘 아는 사탄은 주님께 나타나서까지 사탄을 예배할 것을 주문했고 그러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고 허풍을 떨 때 주님께서는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29)
시편기자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시99:5)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께서 수가라는 곳을 거쳐 유대로 오시다가 남편을 다섯이나 바꿔친 죄 많은 여자를 만나 조상들이 이 산에서 예배했다고 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4:21~22)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OT 짐승의 피의 제사; NT 예수 그리스도의 한번으로 드려진 영원한 희생을 중심 하는 예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받으면서 속죄의 감격과 새로운 삶의 결단으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회복을 맛보게 된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2)
시편기자는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 했는데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챙겨 입은 옷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옷이다.(리브가가 야곱에게 입혀준 에서의 옷 같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61:10)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온 인류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은 선포한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시86:9)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존귀를 드리는 것이 영광을 돌리는 출발이다.
Ⅱ.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신다.(23~25)
(23)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24)ⓒ그의 영광을 모든 민족 중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25)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어찌 보면 이것은 예배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해 버릴 수 있는데(예배 때 찬송 불렀는데…) 찬양은 예배에서 사죄의 감격을 잃지 않은 삶의 연장으로 매 시간 드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극진히(히, meod, 열렬함→힘있게, 전적으로)”
시편기자는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시66:4)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시100:2) 라고 권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 역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법대로 드려야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아름다운 곡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찬양일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를 모르는 것이요 배은망덕이 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찬양은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 오직 죄인 된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부활하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는 기쁨을 매 순간 고백하는 마음과 입술의 열매이다. 세상이 다 변해도 이것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세상에 갈등하고 힘겨워 하는 나를 완전히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찬양의 이유로 충분하다.
Ⅲ. 착한 행동으로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신다.(28~29f)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규정을 따르는 예배, 믿는 사람의 삶에서 예배의 연장으로 드려지는 찬양으로 다가 아니다. 이 세 번째 부분은 믿음의 사람들의 빛된 행실로 이를 보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결과요 최종적인 것이다.
주님께서 일찍이 산상보훈에서 당부하시기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삶으로 영광을 돌리는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요 기뻐하시는 그의 백성 됨의 자세요 모습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여러 번 당부를 한바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모든 것이 잘 되야 반드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확실한 신앙적 자세는 고난 가운데서도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베드로 사도가 일러주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예배, 찬양, 착한 행실로 세상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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