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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28)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이 말씀은 변치 않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 PC, 남편, 아내, 자녀, 성경의 모양 - 이런 입장에서 변치 않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OT의 예언을 마감하시면서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3:6)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이 소망을 주는 것인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과 언약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 같은 언약 속에 있는 우리 역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OT을 가장 많이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으로 죄를 위한 한 제사로 우리를 확실히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불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고 선언한다.
주님의 한 육신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고 동일한 고백을 드리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자신이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창조 받을 때부터 본성으로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수시로 변하고 늙어가고 소멸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 비로소 영원을 소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변치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안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님께서 우리네 사람처럼 수시로 변한다면 그러한 분을 믿을 수도 없고 섬길 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결 같으시다는 사실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소망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가진 믿음 역시 주님처럼 변치 않는 …
Ⅰ.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알량한 우리 사람들의 사랑은 늘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어쩌면 영원한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하다. 사람의 불순종과 거역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시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31:3-호세아를 통해 보임)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사도라고 하는 요한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고 증거해주고 있다. 아침에 사랑한다고 하다가 저녁에는 미워한다고 하실 수 없는 상대의 반응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별명을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분명하고 누가복음 15:11~32의 비유가 있게 되었을 것이다.[제목이 The Prodigal Son 이 아니라 The Father of Love 가 더 합당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로 불변하시는 사랑 때문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그래도 도덕이나 윤리가 제대로 서있는 환경에서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어느 정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유될 수 있었다. 순종하는 자식은 기쁨으로 사랑하고 방탕 하는 자식은 아픈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비교한 근거를 잃어 버렸다.
하나님 아버지의 변치 않는 사랑 때문에 부족한 내 자신이 아직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 감사할 수 있는 …
Ⅱ. 하나님의 말씀이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40:8) 하였고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119:89)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하셨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고, 非理性的이고 感性的이지 못할 때도 있고, 인기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옳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한 성경은 그에 대한 모든 비평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영원하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고 마음을 다해 그 말씀을 따르는 게 사실 얼마나 단순한 삶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쉽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해석을 달리하려 하고 해석의 차이라고 몰아 부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주 단순한 비유를 우리 주변에서 들어본다면 [교통신호]는 확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빨강신호에 정지는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라고 진행을 한다면 …?
주님께서는 산상보훈 말미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수 천년 전에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창세기 3:15의 약속이 때가 차매 이루어졌고 그 이루어진 약속은 이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말씀의 권위가 무너지면 인류의 기반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우리를 그 불변하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지속적으로 세우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TV에 나오는 내용이나 사람들을 믿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는 데 그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신문 읽는데 그 많은 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성경 보는 시간은 그렇게 적은 것일까? 안타깝다.
말씀이 변치 않는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하다고 해도 약속을 하고도 바꾸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바꾸시지 않으실 뿐 아니라 바꾸실 필요가 없으시다. 이제 그러한 부분을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의 만드신 어떤 법칙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Ⅲ. 하나님의 목적은 변하는 법이 없다.
우리 인생의 목적 역시 수시로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서의 계획은 큰 것에서 점점 작은 것으로 좁아지고 고쳐 잡게 된다. 우리의 계획을 수시로 바꿀 수밖에 없는가? ①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통찰력이 없기 때문, ②처음 계획을 실행할 만한 여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
그럼에도 하나님의 목적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그 전체적인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구원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14:24)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33:1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문제를 발생시키지는 않으시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은 하신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나눈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 모든 일들에 관여하시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세상은 어떻게 될까?’ 여기에 답변을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있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다시 보내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새로운 정보가 필요 없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이라곤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계획을 바꾸시겠는가?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삼상15:29)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쓰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연령에 관계 없이… 그러나 억지로 그 목적을 이루게 하지는 않으신다. 올바를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다. 당신만 허락한다면 당신을 간절히 쓰기를 원하고 계신다.
세상에 대한 목적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 대한 목적을 갖고 계시고 비록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바꾸지 않으신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b)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8:29f)
하나님이 하필이면 이 시대에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 각자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 각자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을 통해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현재를 보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과거를 변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세상에 나게 하신 분명한 목적이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계획과 방법을 바꾸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에덴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바뀌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성취된 구원의 은혜는 순종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막16:16; 행2:38)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관과 내 인생을 그 말씀 위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원리에 순응한다면 변치 않는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고 굳건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125:1)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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