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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다. 잊어버려서 그러는 것은 그나마 좀 낳은 편이고 의도적으로 어기는 일들도 자주 있는 것을 보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소한 약속까지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약속에 철저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해야 하며, 공정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믿음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을 우리는 믿을 수 있다.
OT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신실하신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명기 7:9에서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고 모세를 통하여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신실하신[히, aman (부모나 유모로서) 양육하다, 확고 하다, 신뢰하다, 확신, 믿다, 키우다, 세우다, 영구하다, 신실하다(오래 계속하다, 꾸준하다, 확실하다, 확실히, 참으로, 확실한)]는 등등의 뜻을 가진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민수기에서는 표현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23:19)
다시 신명기서에서 두 곳을 보면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32: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33:4)
그러나 NT에서 이 신실하다는 표현 모두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고 대신 하나님께 대하여는 좀 다른 표현으로 “미쁘심[헬, pistos faith, faithfulness; 설득, 신용, 도덕적으로(종교적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종교적 선행에 대한)확신, 특히 구원에 대해 그리스도를 신뢰, (추상명사)직업에서의 꾸준함]”이나 “미쁘시다[헬, pistis faithful, believing; 대상이 믿을 만한, 주제가 신실한, 믿는, 신뢰하는, 확신하는, 진실한]” 는 낱말로 하나님께만 번역되고 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미쁘심을”이라는 표현을 비롯해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라고 확인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미쁘신 분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처럼 미쁠 수는 없을지라도 미쁘신 주님을 의지하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신실하신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는…
Ⅰ. 미쁘신 하나님이시다.(3~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진실하고 싶어도 미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신실함이라든가 미쁨은 생명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불가능하다. 약속을 지키기 싫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속적으로 지킬 수 없는 한계 때문에도 사람은 미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2:13)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을 좀더 분명히 증거하기를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8) 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폐하실 수 있느냐?’고 묻고 ‘비록 사람이 거짓될지라도 하나님은 참되시므로’ 사람들로부터 약속을 어겼다고 할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신실하실 수 밖에 없다고 증언한다.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유익은 참으로 많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1:18) 미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행복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연이어 바울은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 시리라”(살후3:3)고 확신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하신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미쁘시다거나 신실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하나도 어김이 없이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완벽하게 지키셨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신실함을 지킨 자들에게 상주시고 믿음을 거절하고 죄악과 더불어 산 자들에게는 거기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치르시리라는 변할 수 없는 약속도 틀림없이 그대로 지키실 것이다.
Ⅱ. 하나님의 미쁘심에 합당한 믿음으로 응답한 아브라함.(히11:8~11)
미쁘신 주님은 신실한 그의 백성과 교제하신다. 더 쉽게 말하면 바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미쁘신 하나님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누린 사람들이 샛별처럼 빛나고 있는데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을 히브리서 11장은 다루고 있고 그 대표자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①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8) 약속에 대한 신뢰가 업소는 불가능한 일이다.
②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9~10) 약속의 땅이라 했어도 집을 짓지 않은 이유는 약속에 순종하기 위해서이다.
③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11) 비록 실수는 하였지만 성령께서는 사라도 믿음의 여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④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17~18) 이런 약속이야말로 강한 신뢰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나는 얼마나 하나님을 미쁘신 분으로 확신하고 순종하는가? 아브라함처럼 사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성경은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 같은 상황에 있다면 어떠했을까? 약속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나도 계속 하나님의 약속을 사라처럼 의심치 않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결국 불신은 불신자에게만 손해일 뿐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국 나타나는 변화에 민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민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욥도 요셉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약속을 틀림없이 이루시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오늘 나에게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어야 비로소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일들이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현상만이 계속 나타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에 어울리는 믿음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과 정반대 반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 역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도 믿어지고 거기에 우리 인생의 목표를 맞출 것이다. 우리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오늘 나의 삶의 목표는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를 점검해야만 한다.
Ⅲ. 그의 백성들끼리도 신실해야 한다.(요일1:6~9)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먼저는 지도자들이 믿음을 끼칠 수 있어야 하고 그 신실한 리더쉽에 같은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세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하나님의 미쁘심을 신뢰하는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서로 간에도 신실할 필요가 있음을 성경은 가르친다. 야고보가 당부하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는 교훈은 사실 철저한 신뢰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신앙적 교제이다. 십자가의 사죄의 감격을 같이 가진 사람들끼리 주님의 사죄의 감격을 실제적으로 나누는 모습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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