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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눅 12:31~34 2013-03-31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에 또 어디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주님의 직접적이 가르침이신데 마태복음 6장에도 꼭 같은 말씀이 나온다. “(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나 본문의 내용과는 진행 방향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의 내용에서는 이 세상 육신의 삶보다는 영원한 하늘의 세계에 대한 가치를 찾는다면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 주시리라는 약속과 함께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오늘 우리가 읽은 첫 절의 말씀이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셔서 영원한 가치가 보다 분명한 우리 시대에는 더욱 영원한 하늘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영원한 약속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오히려 주님께서 이 땅에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보다 더 우리의 관심이 이 세상의 가치에 머무르지 않는가 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갖는다.

물론 1세기말에도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라고 하여 세상의 가치에 치중하는 것에 경계를 주고 있다.

사람은 분명 최상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하늘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게 된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스스로 큰 소리쳐도 삶의 목표나 방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보다 이 땅에 있고 주님보다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면 이 사람의 가치는 분명 이 세상에 더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떨 때는 우리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의 절반정도만이라도 주님을 위해 힘써준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가지게 한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누면서 진정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고 만약에 세상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다시 영원에 다가설 수 있는 …



Ⅰ.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지는 점검하는 시금석이 바로 첫절이다. 이 말씀에 바로 앞서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30)고 되어있고 연이어지는 “다만, 헬, plen”(오직-개역한글, 그러나, 그런즉, 그럼에도, 오히려)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다운 것이다.

특히 여기 “그의 나라”는 통치의 개념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어떤 조건에서든지 주님의 통치를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상황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먼저인 백성’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오늘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사실 참 어렵고 변명이 많다. 우리의 어떤 변명도 사실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데에 있어서 정당한 것은 없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져 있는데도 변명하고 핑계하면서 거절하려 하는 것은 그의 나라를 위한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뒤에 주어지는 약속이 믿어진다면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을 요구하든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바로 앞서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10:34) 이런 확신이 없다면 과연 가능할까?

어떤 조건이나 형편 속에서도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시는 주님의 명령이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



Ⅱ.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유하기를 바라고 심지어 믿음의 사람들조차 땅에 썩어질 것에 풍성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인상 때문에 불신의 사람들로부터도 지탄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자신에게 속한 소수의 무리를 격려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원리와는 반대되는 사람들이고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도 결코 많지 않다. 세상은 언제나 많은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격려가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격려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격려는 더욱 중요하다. 언제나 세상의 반대편인 주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은 적은 무리로 존재했고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신앙의 역사 속에서 주님의 위로와 격려와 칭찬의 대상이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7~29)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형제였던 야고보도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2:5)

세상의 상황이나 반응에 관계없이 늘 성령의 위로를 의지하여 적은 무리로 주님께 격려 받는 …



Ⅲ.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33~3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헬, balantion(돈을 위한) 작은 주머니, 주머니, 전대)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 사람들이 있는 자들은 있는 것으로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없는 사람들은 없어서 물질을 키우지 못하는 이 땅의 모순이 해소될 수 있는 곳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보호되는 완전하고 안전한 보화는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저축은행)

예수께서 비유하신 천국의 비유도 여기에 연결될 수 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다시 45~46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OT의 출애굽기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림에는 언제나 풍성했음을 본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와 회막을 짓기 위해서 또 섬기는 제사장들을 위하여 예물들을 가져오게 했을 때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출35:22)에서 시작하여 v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여기에 v21~29 계속해서 “드렸으며”(3회) “가져왔으며”(6) 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 가져온 예물들을 받아 일을 하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계속 드려지는 예물이 너무 많아 모세에게 부탁하기를 드려진 예물들이 너무 많으므로 그만 가져 올 것을 부탁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36:3~7)

성전 건축을 위해 백성들에게 바치게 한 다윗도 감겨하여 찬양하는 것을 듣는다.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대상29:8~9)

14절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비록 영원에 대한 이치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때임에도 이들을 자신들의 보물을 하나님께 맡김을 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11:13)

바울 사도는 흉년이 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물질을 바칠 것을 고린도 교회에 당부하면서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1~12)

언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두는 곳에 마음이 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4)

오늘 우리의 이러한 가치의 변화를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면 역시 어리석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나)의 생명을 거듭나게 하셔서 영원한 소망을 값 주고 사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이런 영원에 가치와 보물을 하늘에 저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세상의 물질은 많다가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다함이 없는 영원 속에서 보화를 하늘에 사놓는 일을 위해 인생을 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