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시 103:1~7 2013-04-14
내 영혼아 주를 송축하라!  
다윗의 시로 표기되고 있는 이 시편은 자신과 공동체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당부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때문에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 우리를 찬양으로 도전한다.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사실 스스로가 경험하고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주님의 크신 사랑을 들려줘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요한복음3:16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복음도 먼 이야기로 들린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백성들과 온 인류,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까지도 이런 감사와 찬양을 격려하는 것은 그의 삶 속에서 사실적으로 체험한 사랑과 사죄의 감격이었다.

선왕이었던 비굴한 사울이 정치적인 원수로 자신을 죽이려는 흉계나 간악함에서 또 자신의 위에 있었던 7명의 형들을 다 제쳐두고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 선택해 주신 사랑과 긍휼, 그리고 이렇게 왕으로 세워 주셨음에도 간음과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신 주님의 긍휼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우리 역시 “찬양합시다! 예배합시다! 기도합시다! 용서합시다! 사랑합시다!” 라는 가르침과 권면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일 뿐이다.

또 이렇게 부탁이나 명령에 의해서 하는 찬양이나 감사는 중심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는 예배가 되고 딴 곳에 마음을 둘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대통령보다 왕보다 귀하신 나를 죄의 저주에서 사탄의 종노릇에서 사 주셨다는 고백이 가능할 때 그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영광 돌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애굽의 종노릇에서 자유케 해 주시고 홍해 물 속에까지 추격해 오는 바로의 전차들까지 물에 빠쳐서 섬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자연스럽게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115:11) 라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 즉, 죄에서의 용서 사죄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경험한 자라야 자신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성령께 의지하여 주님을 즐거워하고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저를 통한 권면이나 부추김이 주님의 성령과 함께 십자가에 속죄를 이루신 예수,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고 부활하신 예수, 하나님 우편에서 모자라는 나(우리)를 위하여 중보 하시는 예수, 죄의 세상에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의로운 싸움을 감당하는 연약한 우리들을 성령으로 도우시고 맞으러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감격하여 찬양하고 예배하는…



Ⅰ. 중심에서부터 경배를 드리자.(1~2)

(1)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두 번씩이나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라고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주님을 즐거워하고 경배할 것을 다짐한다. 다윗은 시편57:7에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하여 다음 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를 굴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평지, 요단강 동편에 있으면서도 지금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고 당부하고 있다.

V1의 “내 영혼아[히, nephesh, 호흡하는 생물]” “내 속에[히, qerep, 가장 가까운 부분, 즉 중심]” “송축하라,히, barak, 무릎 꿇다, 찬양하다, 경배하다, 감사하다]”는 뜻으로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시138:1) 내용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은 중심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라고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은 성경 속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또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로부터 찬양하자는 요청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경배하고자 하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63:5)

내 입술에 붙은 찬양이 아니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 ”는 감격이 중요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이다.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111:1)

우리 각자의 영혼 중심이 주님을 인하여 감격하고 즐거워하며 찬양 드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들이 드리는 찬양을 구경하면서 소리로만 그들을 거드는 들러리인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느혜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8:10) 그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찬양하라!”(621:1) 마음 중심으로부터 감격과 기쁨으로 주님을 즐거워하는 …



Ⅱ. 생명을 주셨음을 감사 드리자.(3~5)

(3)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이유들을 들고 있다. 사실 이유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억지가 될 것이지만 주님은 우리들에게 감사하고 찬양드릴 충분한 이유를 주셨다.

①사죄와 치유를 주셨다.(3) 죄의 심각성에 직면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은혜도 모른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가장 귀한 그리고 잃지 않을 감격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②생명의 관을 씌워주셨다.(4)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완전히 사망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나음을 의미한다. 사실 말기 암 환자들이 살기 힘 드는 것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56:13)

인자와 긍휼의 모자를 씌워 주신 것은 항상 나를 인자와 긍휼로 보신다는 의미이다. 인자와 긍휼의 관을 쓰고 사는 사람들은 나중에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랠루야!

③소망을 주셨다.(5) “좋은 것[히, tob, 선한, 은총을 입은]” 인생에게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만이 인생을 만족케 하실 수 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소망을 잃어버린 인생이 주님 안에서 비로소 힘을 얻고 소생케 되어 인생의 가치를 알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19:7)

다윗은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시86:12~13)라고 찬양의 이유를 고백한다. 이 고백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Ⅲ. 자유를 주신 주님께 찬양 드리자.(6~7)

(6)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7)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세상에서 공의를 볼 수 없고 더욱이 영원히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된 우리를 자유케 할 방법은 없다. 땅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셔서 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신 것이다.

사실 억압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일이다. 죄에 진노하실 수 밖에 없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그 죄를 우리에게 담당시키시면 다 사형판결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지만 죄를 친히 담당하셔서 죄의 대가를 완전히 치르시고 그 대가로 우리를 사망과 저주의 억압에서 자유케 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라고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비로소 온 인류에게 알게 하셨는데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라는 것은 주님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 까지 알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주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어디에 매여 있다면 주님의 희생을 통해서 온전히 자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하여 이 역사 속에 오셨기 때문이다.

온 인류는 아담 이후로 원치 않아도 영원히 죄와 사망과 저주에 종 노릇할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고 바울은 당부하고 있다.

중심에서부터 찬양을 드리자. 죽은 목숨들에 생명을 주셨음에 감사를 드리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주셨음에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을 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