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말씀을 클릭하면 성경구절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종배 전도자
요일 1:3~7 2013-05-26
우리의 사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귀고 함께 하는 사람의 종류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에 생기가 있을 수도 있고 승리가 아니면 패배의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래서 ‘누구와 교제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하와-뱀) 이래서 사람들은 인맥을 중요시하고 나보다 높은 지위나 권력자들과 가까이 지내기를 원하고 또 좋은 인맥을 내세우고 자랑한다. [고후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그러나 믿음의 사람 즉, 하늘에 속한 신앙의 사람이라면 인맥을 중요시하는 것보다 주님과의 사귐을 보다 더 가까이 하고 이런 상태를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롬10:13~14f) 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과 있어서 어느 대상이 편하고 행복한가 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과 미래의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요한 사도의 우리의 사귐이 죄와 어두움 아니면 하나님과 빛과의 사귐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의 과거의 사귐의 대상은 당연히 어두움이었고 이런 관계 속에 결과는 당연히 죄와 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좌와 어두움의 사귐에서 죽어 관계가 깨어지고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울도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중요한 것은 지금의 관계가 영원한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오늘 내가 누구와 주로 관계하고 있느냐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

관계는 바로 삶이고 실제적이다. 그럼에도 이름표만 매달고 다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비 그리스도인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우주 속에 최고로 힘있는 권력자, 최고로 영화로우신 분과 사귀는 것이다.[그리스도-최고 권력, ]



Ⅰ. 사귐을 회복하라고 격려하신다.(3~4)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는 이 시대의 마지막의 상태를 경고하기를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 라고 했고,

다음절에서는 신앙의 형태를 표현하기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5)고 경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관계가 깨어지고 있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잃어진 존재처럼 고독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실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련한 인생들의 죄를 해결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의 심정을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확신과 사랑에 우리 모두를 참여시키기를 원한다고 격려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3f)

이러한 영적인 이치가 확실히 들어나지 못한 OT 성경 속의 신앙의 사람들은 사실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6~27)

각 개인 속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통해서 영광의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복음을 통한 주님의 사랑의 역사이다.

요한 사도는 이러한 자신들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교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b)



Ⅱ. 빛 속에서의 사귐을 확인하라!(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증거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삶 자체가 빛과의 사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심으로써 감춰지지 않은 사귐을 선언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통한 구원을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주님만이 빛이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의 통로가 되심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주님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회복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과거의 어두움 속의 수치스러운 교제가 우리를 부끄러움과 죽음과 절망으로 이끌었다면 주님께서 명령하신 세례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면서 이 어두움의 교제와는 작별을 고하고 전혀 새로운 교제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여기에 사랑의 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셨고 우리 역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 같고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지만(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됨을 빌립보서 2장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 어두움에서 자유 해 보려고 많은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저주와 죽음에서 사람을 건져낼 수 없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적 교제가 사실적인 빛의 교제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승리의 삶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b)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여 사죄를 받고 역시 빛이신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와 사귀며 같은 고백과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나눔)를 통하여 어두움과 죄와 정죄를 이기는 삶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Ⅲ. 하나님과의 거짓된 사귐은 안된다.(6~7)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런 앞의 논리와 함께 중요한 것은 나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인식이다. 이런 것들은 결국 우리가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라는 것으로 능력의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우리가 죽고 사는 원리를 로마서에서 2가지로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6)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김이 새로운 교제 속에 꼭 필요한 것이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이것이 세속적인 육체를 죽여가는 것으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

보다 적극적으로는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그럴 때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14)는 확신을 주고 있다. 이 말씀은 오늘 7절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7)

이것이야 말로 능력이다. 빛과의 교제는 어떤 수치도 만들지 않는다. 당당하고 자랑스럽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죄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승리를 약속하시는 주님과 사귐을 회복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신앙적 교제라고 하는 것이 빛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행여라도 위장된 거짓과 교제하면서 주님과 사귄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었음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거듭난 생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십자가와 성령과 더불어 알고 여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