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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히 1:4~7, 13~14 2022-01-23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사람은 분명히 시공간(時空間)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부리시는 종이지만 이런 입장에서 사람보다 훨씬 능력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주신 성경이라서 그런 지는 몰라도 천사에 대한 언약이나 미래에 영광의 약속은 사람과 달리 없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속속히 다 밝히고 있지만 천사에 대한 속성이나 성품, 그리고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그들의 성격이나 구조를 자세하게 언급한 곳을 충분히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부활로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하신 내용 같은 데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람과 같이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떻게 번성할 수 있을까?” 또 “얼마동안 살 수 있을까?” 육체를 가진 사람과 같지 않다는 데서 자식을 낳거나 늙거나 쇠하지 않을 것 같고 천사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만큼이나 신비한 존재로 생각된다.

필요할 때는 육신을 입고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비한 존재들 그러면서도 적시 적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나타나기도 하고 필요한 역할을 하는 절대적인 순종의 존재들이다.

물론 유다가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일련의 반역한 천사의 무리들도 있는 것으로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분명히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영적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받들며 사람에게 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면서도 어떤 영광도 취하지 않으려는 성품을 성경에서 더러 본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삿13:15)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삿13:16)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전쟁을 감당하는 천사장이 있는가 하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살전4:16f)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유1:9; 단10:13, 21, 12:1)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평화의 소식을 알리는 천사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천사들의 역할이나 급수가 다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눅1:19)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을 위해서 배정된 천사가 있는 것처럼 기록되고 있는 성경도 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유대인들의 사상은 각 사람에게 배정된 천사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보이는 말씀들도 있다.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행12:15)

오늘부터 나누는 1:4~2:18의 말씀이 천사와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주님을 증거하지만 먼저 1장을 다루면서 천국의 왕이요 창조주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중간의 v8~12은 다음 주에 나누도록 하고 4~7과 13~14을 강론하겠지만 순서에 의해서 보다는 같은 내용들을 짝지어 상고하도록 한다.



Ⅰ. 천사들과 비교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4, 6)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와 비교될 수 없는 영광은 그의 이름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비교될 수 없는 아들과 종의 신분 뿐만 아니라 마치 복음과 율법과도 비교될 수 없는 주님은 주인이시고 천사들은 같은 영적인 존재이지만 그보다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지위와 신분에서 비교를 허용할 수 없다.

이를 이사야가 몇가지로 비유함을 본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사10:15)

마치 지음을 받은 질그릇과 토기장이에 비유되는 것과 같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29:16, 64:8)

여기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이란 비교에서 “뛰어남은, 더 좋은, 더 낳은[κρείττων, 비교급←κράτος, 통치, 세력, 권능, 힘]”는 표현을 쓰고 있고 이 표현은 이 히브리서의 특징적인 표현으로 모두 13장으로 구성된 이 서신의 매 장에 한번씩 기록된 것과 같은 횟수이다.

※(NT 19회) 6:9더 좋은 것, 7:7더 높은 자에게, 19더 좋은 소망, 22더 좋은 언약, 8:6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9:23더 좋은 제물, 10:34더 낳고 영구한 소유, 11:16더 낳은 본향, 35더 좋은 부활, 40더 좋은 것, 12:24더 낳은 것.

이 히브리서를 제외한 NT에 모두 6회밖에 사용되지 않았다(고전7:9, 11:17, 12:31; 빌1:23; 벧전3:17; 벧후2:21).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4b)라고 하여 천사들도 구원의 역사에 쓰임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 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심지어는 죽을 수 없는 천사보다 더 낮아지시기까지 하셨음을 “저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2:7, 9)라는 표현 속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순종과 죄인 된 사람들을 위한 희생 때문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는 영광을 얻으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6)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 딸을 삼으신 우리 모두와 비교될 수 없는 분으로 요한은 홀로 한 분이신 “독생자”(요1:14, 1:18, 3:16, 3:18; 요일4:9)로 표현하고 있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6f)는 당연히 재림으로 다시 오실 약속이고 처음 말구유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는 고난과 희생을 위해서 오셨지만 재림의 때는 독생자의 영광을 제대로 나타내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 때 이제는 죄와 상관없이 구속 받은 모든 백성들은 물론 모든 천사로부터 영광을 취하실 것을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6b)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왕래하시며 사역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옆에서 그의 능력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는 한 낫 나사렛의 이름없는 선지자정도로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번째 오실 때는 그를 거역하던 사람들은 물론 모든 인류가 그의 위엄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이러한 사실을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6)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Ⅱ. 천사들에게는 아들의 권위를 약속하신 바 없다(5, 13)

여기에서부터 다음 주의 말씀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과 비교될 수 없는 권위를 가지셨음을 난외주에 보는 대로 OT을 모두 일곱번에 걸쳐서 인용하면서 증거한다(시2:7; 삼하7:14; 시97:7; 시104:4, 45:6~7, 102:25~27, 110:1).

그럼에도 역시 사람의 역사에 있었던 사실을 인용하다 보니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을 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질문하신 적이 있는가 하고 묻는 표현인데 물론 OT에는 천사들을 아들이라고 표현한 곳이 있기는 하지만(욥1:6 등) 보다 넓은 의미의 표현이고[…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5b)],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묘사는 사람의 기준에서 말씀하시는 표현이다.

창세전부터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낳은 분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 낳았다”는 시간적인 개념이나 마치 사람이 자식을 낳듯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 물론 성경에는 비슷하게 표현되는 곳(골1:15)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한 것일 뿐이다. 마치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엡3:14b~15)라는 표현처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5b) 이 말씀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예언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계보에서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상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v5은 전반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 되심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하반절에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심에 의미를 두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천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없이 아들이신 그리스도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v13에서는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13) 한 것 역시 메시야 예언에 가장 자주 인용하는 시편110:1의 인용이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예언된 이 말씀을 어느 천사에게도 묻거나 적용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물으시면서 자신에 대한 예언이었음을 인용하시는 내용이 마태복음22:44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 다윗이 직접 존귀와 찬양을 돌리는 내용으로 인용하고 있다.

베드로나 사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오순절날 천하 각지로부터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면서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행2:35)라고 인용한 바 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영광과 위엄을 다른 영적인 세계에서 물어본 일도 없을 정도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만 영광을 돌렸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도 부리는 천사들과 비교될 수 없는 위엄을 아들에게 주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보겠지만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존귀를 돌리고 있음을 본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8~9; =사9:6) 역시 다음 주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Ⅲ. 천사들은 오로지 섬기는 자로 존재한다(7, 14)

오늘의 마지막 부분은 천사의 역할을 증거하고 있는 내용이다. 사람이건 천사이건 자기의 역할을 바르게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에서 생긴다. 이런 입장에서 사람과는 다르게 천사들은 일부 서론에서 인용했던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혜의 사람인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하였는데 쓰임에 적절히 역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으심에 가장 합당한 것이다.

이 말은 또 각자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는가?’ 더 직접적으로 우리 새로 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셨는가?”라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천사는 천사로서 부리시기 위하여 지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택하심에 바른 이해와 역할이 우리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데서 이 부분을 천사의 존재와 더불어 돌아 봐야할 중요한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2:14의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최종적으로는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요일3:8)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씀까지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7) 하신 역할을 먼저 보게 되는데 여기 “바람[πνεῦμα, 영, 바람, 호흡]”으로 “사역자[λειτουργός, 예배자, 공적인 일꾼, 사역자, 봉사자]”들을 “불꽃[πυρὸς φλόγα; (πῦρ φλόξ) 불타오르는]”으로 삼으셨다 했는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들도 그랬다.

여기 마지막 불꽃에 따른 모습을 찾아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3:2)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이 과정에도 천사가 역할 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으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 역시 천사들의 역할을 생각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2:11)

앞에서 자신의 분수나 위치를 다시 거론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천사들처럼 언제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하여 자기들의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들에게서 배운다.

언제나 무엇이 중심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는데 천사들은 변함없이 하나님 중심의 역할을 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로 자기 중심이 되는 예들을 더러 본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모든 것을 자기 중심에서 해석하고 처리하는 것이 문제다.

자신을 중심하여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을 이기주의라고 하고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렇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신앙하는 사람들이 더 자기 중심이 되기 쉽다. 대부분의 건전하지 못한 신앙이 여기에서 발달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항상 여기에서 출발함을 보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4)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 지으시고 하나님나라를 상속할 구원받은 사람들을 섬기라고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분명히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섬김을 위하여 피조 되었는데 그것도 현실에 있어서는 분명히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섬기도록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그 역할부터가 예배자(λειτουργός)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예배자로 지으심을 받은 천사들의 찬양보다도 그 나라를 상속받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의 찬양을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섬기기 위하여 창조 받은 천사들은 이 우주의 역사 가운데서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섬기도록 보내졌고 여기에서 어긋난 천사들은 별로 없음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우리가 도전을 받는다.

물론 오늘의 주제는 시공간을 넘어서 여러가지 모습과 내용으로 역할 하는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들과 비교될 수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심을 나타내고 찬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와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실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어느 천사에게도 자신의 아들이라 거나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을 내어주신 일이 없으시다.

천사들은 바람과 같이 불꽃같이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지만 하나님을 순종하고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모든 성도들을 섬기게 하시려고 지으신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다.

천사들은 섬김을 위하여 지어졌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천사들과 하늘로부터 거듭난 성도들로부터 영광과 찬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다. 그럼에도 우리들 역시 영광을 기대하지 않고 묵묵히 섬기는 천사들의 순종을 따라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