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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0:28~31 2000-09-17
위로부터‥‥  
우리는 올해의 풍년의 꿈에 부풀어 있던 웃음 띤 농민들의 미소를 8월 중순까지만 해도 기억한다. 올해 농사는 큰 이변만 없으면 대풍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한달 그것도 오곡과 실과가 결실 하는 마지막에 와서 결국은 주름진 근심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애를 써도 위에서 허락 치 않으면 되지 않는다는 쓴 교훈을 배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리 속에서 우리 신앙의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위에서 열려야 가능하다. 땅에서의 시작은 언제나 약속이 없다. 신념 하나로 버텨 보지만 아래서 위를 향해서 시도하는 일은 애당초 바벨탑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믿음의 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불신자들이야 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조차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의식치 않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위에서 허락은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 저지르고 스스로 절망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들을 수다하게 보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의 교훈처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3)



우리가 불신자들과 다른 것은 하늘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놀라운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 이 말씀은 분명히 엘리야를 대표한 모든 신앙의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두려워하라" "두려워하지 마라"로 명령되어지고 있고 이것이 적어도 신앙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육적인 사람은 세상과 위기를 두려워하며 당장의 손해를 염려한다. 영적인 사람은 영원을 인하여 두려워하고 세속적인 사람은 오늘을 두려워한다.



자연의 하늘이 있고 영적인 하늘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합의 때에는 하늘이 닫혀 비가 오지 않음으로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지게 되었고 그 육신 적인 일의 원인은 영적인 죄악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육신의 일이 잘 안되면 영적인 점검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물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바른 길로 세우신다. 이런 입장에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솔로몬을 주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 라고 비유적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을 듣는다. 이런 입장에서는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와 무관한 것인 없다.



이런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육신 적인 일들이 쾅쾅 막힐 때에도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인 하늘을 먼저 뚫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을 먼저 간파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 욥은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10:2)하고 기도한다.



요나와 함께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난 선원들은 비록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향하여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욘1:8)고 다그친다. 어떤 일들은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처럼 신앙의 사람들이 관련된 역사의 하늘은 반드시 영적인 하늘이 먼저 열려야 해결이 됨을 배울 수 있다.



개인의 하늘이 있고 모두의 하늘이 있다.



이 역사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함께 살지만 그 역사의 됨됨이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또는 '소수의 사람 때문'에 복을 누리고 고난을 당하는 일들이 반복됨을 볼 수 있다. 렘5:1에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인정하시는 의인 한사람이 없어서 망했고 다시스로 가던 상선은 한 사람 요나 때문에 풍랑을 만나고, 이스라엘은 악한 아합 왕 한 사람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모압의 위협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가운데 남쪽 여호사밧 왕과 함께 엘리사에게 물을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왕하3:14) 고 말씀하는 것을 듣는다.



이런 입장에서는 열린 하늘을 가진 한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가를 배우게 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하였고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9) 그리스도의 희생은 이러한 입장에서도 귀한 모범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늘을 여는 한 사람의 역사의 주도자'를 찾으시고 기다리신다. 그러한 사람은 꼭 대단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나 자신이 될 수는 없을까? 이 교회를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도탄에 있는 이 대한민국 교회를 세속에서 끌어낼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내가 될 수도 있다. 믿는가?



항상 절대적인 결정권은 위에서 가지고 계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먼저는 위로부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원하심인가?" 어린아이들이 놀러나가도 부모의 허락을 신청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고 있으면서 결제 없이 시도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때마다 우리가 어떤 일들을 시작할 때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원하심인가?"를 묻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며칠씩이나 기도를 해야할 경우도 있겠지만 꼭 전도자를 찾아가서 물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면 어떤 행보나 일들이 위에서 허락하시는 것인지 스스로의 정욕으로 시작하는 무모한 것인가를 묻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걸어 잠가 버리면 그 일이 어떤 결과로 가도 결코 주님은 축복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는 말씀을 좋은 방향에서만 주님께서 신앙의 사람들에게만 주신 권세로 자랑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부정적으로도 그대로 유효한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묶어버리면 하나님께서도 묶어 버리실 수 있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도 한번쯤 이해해야 할 말씀이다. 우리 마음이 늘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열어 놓으실 것이다.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완악한 마음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그대로 우리의 마음에 넘치고, 하늘이 열려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있고 이것은 모든 삶에 은혜의 역사를 일으킨다.



결론.



예수님께서 몸서리쳐지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도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눅22:43)고 성경은 전해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그냥 마구잡이로 내어 보내지 않으셨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 하늘이 복음을 위하여 열릴 때까지 이리 떼 같은 세상으로 보내시지 않으셨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고 베드로 사도는 간증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어떤 것도, 심지어는 참새 한 마리까지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성사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 나에게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는가? '내가 정말 믿음의 사람이라면' 먼저 그 일 자체보다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점검해야만 한다. 세상의 평가를 두려워함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늘의 닫힌 곳을 찾아내어 뚫어야 한다. 오늘 우리 앞에 엉킨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스스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먼저는 위로부터 풀어야 한다. '내가 정말 신앙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꼬여버린 실타래에서 풀어낼 수 있는 한 가닥을 찾아내는 길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 나라의 안타까운 상황들은 한탄하고 있는데 그 해결의 시작이 엉뚱한 것 같지만 바로 하늘을 열 수 있는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믿는다. '내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 한 사람으로 이 역사를 열어 가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