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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세기의 교회들은 박해를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고 이러한 불 시험 같은 환난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위로와 용기, 그리고 소망을 주기 위하여 같은 고난 속에서도 격려의 편지를 쓰고 있다.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하늘의 영원한 나라를 향해 가는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베드로 사도는 무엇보다도 이 나그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계속 환기 시켜주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붓을 들면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1:1~2)라고 격려하고 나서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고 경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나그네길을 가면서 때로는 편하게 갈 수 있는 노자와 여행의 편리한 도구를 얻을 때가 있고 그러다가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힘겹게 이 순례의 길을 갈 때도 있다.
이 나그네에게 도움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는 분은 시편기자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고 증거 한다. 이 말씀은 꼭 우리의 현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가는 땅이 어디든 간에 그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그네에게 절대적인 절망은 되지 못한다는 건인데 그 이유는 돌아갈 고향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과 더불어 경계하는 것은 이 나그네 인생 길에 절망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다 나와 같은 나그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소 부정적인 말씀 같이 들리지만 이 세상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절망하지 않으면 천국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다는 전제로 이 말씀을 이해했으면 한다.
Ⅰ.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11f)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이 죄악의 땅에서 썩어 없어질 가련한 인생들,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시고 진정한 고향을 찾아 주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의 빚으로 도저히 이 거쳐갈 타국에 영원히 종노릇 하다가 죽을 인생을 위하여 주님은 자신을 주시고 우리 대신 이 죄악의 땅에 오셔서 몸소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 이 저주받을 운명의 땅을 박차고 영광의 고향 영원한 약속의 땅을 보게 하시고 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찾아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1.나그네의 길이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그네는 때로는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식사를 거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고향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이 거쳐가는 여행의 끝이 영원한 영광에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한다면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이 거친 인생행로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한다면 주님과 또 모든 같은 종류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당하는 고통에 불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잊어버린 40년 광야의 이스라엘은 약속의 영광의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주님의 약속이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8)
이 땅에서 고난을 겪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저 멀리 고향에서 우리를 보시며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42:5) “…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11) 고 격려하고 있다.
2.거쳐갈 이 세상(타지)을 고향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거치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 편하고 좋은 환경을 만나면 그곳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이 지나갈 땅에 한번 마음을 뺏기고 나면 고향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멸망당할 이 땅에 모든 힘과 능력을 다 쏟아버리고 고향 갈 꿈을 접어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각성시키는 말이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f) ‘경성하고 깨어서 마음 빼앗기지 말아라, 여기는 잠시 후 사라지고 잊혀질 절망의 도성이다!’ 라고 경계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곳에서 살지만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수시로 각성한다면 많은 잘못된 애착으로 인해 오는 아픔들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3.언젠가는 이 나그네의 발걸음이 끝날 때가 있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이 고달픈 나그네의 인생길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목적과 소망에 대하여 인내가 필요한 것은 언제 이 고달픈 인생길이 고향에 도착할 것인가 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격려하기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6~39) 하였다.
이런 모든 이유에서 나그네길을 가는 인생의 길손들에게는 돌아갈 고향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Ⅱ.돌아갈 영원한 고향에서 후회할 짓을 해서는 안 된다.(11b)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향을 그리며 수고의 삶을 살다가도 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면 부끄러움으로 자기를 아는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을 잘 모르는 거쳐 가야할 타향에 안주해 버리는 어리석음으로 인생을 산다. 그런 이유에서 베드로 사도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늘 우리는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의지하다가 후회할 일을 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天路歷程의 길을 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 나그네의 여정을 주님께서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늘 영원한 고향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제쳐둔 체로 계획하고 일하는 것들이 결과에 가서는 오히려 자신에게 손해날 짓만을 하곤 한다.
이것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한탄하신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우리는 주님 없이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손해나게 하는 것들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 좋은 것들을 주시려고 해도 이러한 우리의 욕망과 죄악이 주님의 은혜를 가로막아 버리는 비극을 같은 선지자는 선언하고 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5:25)
우리 인생에서 후회하게 하는 일들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대부분은 우리 인생여정을 주님께 의뢰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욕심과 안일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흐리게 하는 실수들을 더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실수하고 범죄 할 때마다 곧바로 해결하여 이 나그네 인생 속에 죄가 쌓이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하였는데 오늘 본문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당부는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육체의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 이 나그네길에 선 순례자들에게 주시는 특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의지를 순종하려는 결단과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격려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만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싸움이다. “…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이 타관 땅인 나그네길을 가면서 영원한 고향을 버리게 하는 어리석음이나 나중에 천국에 이를 때에 후회할 일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
Ⅲ.지나가는 타향의 사람들에게 비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12f)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많은 오해와 불신을 받아야 했다.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사람들은 까닭 없이 신앙의 사람들을 독한 짐승같이 생각하고 괴롭히는 일이 다반사였다.[초기에 쓰여진 글들에서 이런 흔적들을 더러 발견하곤 한다.-특히 모여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인하여 사람 고기를 먹는 식인종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억울한 중상 모략을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서 바로 연이어서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라고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러한 알지 못하고 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는 대응은 ‘선한 행실’이다. 선한 행실은 의도적이고 전시적인 것이 아닌 주님과 함께 임마누엘의 삶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연출하는 선행을 많이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의 선행의 동기는 십자가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인한 善이어야 한다. 물론 세상은 그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지만 우리가 마지막에 돌아갈 천국에서 錦衣還鄕으로 만날 아버지 하나님 앞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의 삶이 비방 받지 않는 선한 삶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의 잘못이 세상에 더 잘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탄식하는 것처럼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4) 라고 안타까워한다.
주님께서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당부 하셨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이 불신의 사람들에게 욕은 듣는 것은 곧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 욕을 돌리는 것을 알아서 선한 행실로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우리의 전도나 말이 더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님과 임마누엘을 산다면 거기서 나오는 행동은 당연히 아름다운 것일 것이다.
Ⅳ.나그네의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보가 되어야 한다.(12b)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12-표준 새 번역)
나그네 인생 길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삶의 목적이요 자세이다. 앞에서 부정적으로는 타향의 사람들에게 비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소극적으로 욕을 안들을 정도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 문제를 일으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비방하는 비방을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데 행동이 어떠하다는 것은 바로 소속된 나라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라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보인다고 하는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 ‘아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 꼴인 걸 보면 천국도 알만하지!’ 라는 평가보다는 ‘저 사람의 삶을 보면 역시 천국이란 아름다운 곳인 것 같다!’ 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와 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①이 땅에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삶이 지나가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천국을 소개하는 소개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2~3)고 경계를 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읽는다고 할 때 우리는 경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임마누엘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②재림의 때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어야 한다.
당장에는 오해를 받아도 선한 사람의 행위는 밝혀지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뒤에서 들리는 삶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한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평생동안 선을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벧전4:19)
(11)사랑하는 형제들,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12)그리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던 그들도 여러분의 아름다운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그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공동]
나그네 인생임을 잊지 말고 이 생애동안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영광을 주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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