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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사 12:1~6 2003-10-04
내가 주를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인생은 때때로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럴 때 도움을 구할 데가 없는 사람은 그만큼 불행한 사람이다. 또 도움을 하소연 해봐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대상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불행한 인생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구해도 받을 수 없는 대상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위기와 절망의 때에 도움을 어디에 호소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들의 본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경제적 위기에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서로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이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더욱 위기에 노출되기 쉬운 시대이기 때문에 재해를 잘 넘기기 위해서 보험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오늘 나는 급할 때 어디다가 도움을 구하는가? 분명히 이 사회의 여러 장치들은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고 이번의 위기를 만난 사람들은 여러 곳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움을 주고받는 것조차 이 세상에서는 공평치 못하다. 세상의 이 도움의 조건을 그야말로 여러 가지로 나눠 놓는다. 똑똑해서 장래가 있기 때문에, 예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재산이 많기 때문에… 등등, 어떤 사람들은 도움을 쉽게 받고 많이 받는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편견이 있음을 본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한없는 사랑과 도움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을 드리고 있고 이 찬양은 사실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를 순종하기만 하면 편견이나 차별 없이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야말로 편견과 소외를 당하는 우리 연약한 인생들에게 진정한 도움이시오, 힘이 되시는 주인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도움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님은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거나 권력자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지원이 더 쉬운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불신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도움을 주신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조건과 같은 것이 아니냐?’ 고 항의할지 모르지만 사실 ‘주님을 순종하는 자’에게 라는 조건은 세상의 조건과 같은 조건이 분명히 아니다. 우리는 보험을 넣어두고 위기를 만나도 보험료가 한 달이라도 연체되어 있으면 온전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가입되어 있는 건강보험 하나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님께서 허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열어 놓으신 은혜의 문이다. 또 세상의 보험처럼 우리의 재산을 정기적으로 투자해야만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이 주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누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이 무조건의 구원의 약속에도 사실 마음을 닫아두고 있는 인생들이 가련한 것이다.

그럼 주님 넘치는 은혜와 도움에 감격하고 있는 이사야를 통하여 선하신 하나님의 도움에 감격하는 고백을 이해하고 우리 것으로 누리자.

Ⅰ.전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셨던 하나님.(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죄에 재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죄에 대하여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를 비롯한 모든 일반적인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진노의 대상이다. 우리는 싫지만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사야도 이러한 인간 실존을 고백하였던 것을 본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그러나 부정한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깨끗함을 받는다.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7) 그래서 이사야는 고백하기를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대상으로 머무는 인생보다 불행은 없다.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이유는 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서 진노를 거두시고자 자신의 독생자에게 이 무서운 진노의 형벌을 쏟으시고 그 대신 우리에게 도움이 되셨다. 이것이 바로 이 역사 속에 십자가의 사건이다. 이 놀라운 은혜의 자리를 준비해 두시고 주님께서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하시기를 “내가 너의 인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너의 주님의 자리에 앉아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십자가의 피 흘림을 너의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려무나! 그래서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놀라운 사죄의 감격을 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위로가 되고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1b) 죄를 가진 인간에게 진정한 위로가 없고 감사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 롬4:6~8) 라고 감격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도움을 주시고 싶으시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서는 도움을 구할 수 없다.

Ⅱ.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여기서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주 여호와는 …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2번씩이나 감격하고 노래한다. 이 두 번의 노래로 쓰인 “나의 구원이시라”는 말씀은 히브리 원문에 [yeshuah, 구원(창49:18; 출 14:13), 도움(시3:2; 삼하10:11), 승리(시20:5), 번성, 건강, 복지, 번영] 등등의 복된 의미를 가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우리 인생의 위기에서 죽음의 절망에서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구약에서부터 줄기차게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찬양할 수 있다. “예수는 나의 구원이시며; 예수는 나의 도움이시면; 예수는 나의 승리이시며; 예수는 나의 번영이시며; 예수는 나의 건강이시며; 예수는 나의 복지이시니; 예수는 나의 모든 것에 모든 것 되십니다!” 아멘!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에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인생은 위기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드려도 결코 손해 될 것이 없고 위기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보이는 것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이 세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할렐루야!

젊은이나 늙은이나 그 노래 제목은 사랑의 대상이다. 이 놀라운 구원과 풍성과 생명을 넘치도록 공급하시는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의 노래는 당연히 이러한 삶이 있게 한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한 고백이 바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는 찬양이다.

“생활 속에서 내가 깨달은 바는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믿음은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권능에 맡기고 그를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 의해서만 인간은 평안 속에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Dwight David Eisenhower(USA 34th P.)

구원의 주님을 모신 자는 ①두려움이 없다. 인생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②나의 힘이시며 라고 자신 만만하고 그러한 삶이 된 까닭에 주님의 ③나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 권면하고 있다. 오늘 이 감격의 고백을 듣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는 감격스러운 믿음의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

Ⅲ.언제나 나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을 주시고 때마다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님은 자신의 은혜에 의지하고 자신의 날개 그늘 안에 피한 자의 평생을 책임지신다. 이스라엘 속에서 우물은 언제나 귀중한 생명과 직결된 재산이요 가치였다[창26:12~22-이삭의 종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우물 싸움(블레셋 사람, 그랄의 목자들)]. 그럼으로 우물을 지키는 것이 곧 생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구원의 다른 표현이 풍성한 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사35:6~7, 55:1) 라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이 제목은 앞의 제목과 바로 연결시킬 때 더욱 실감나는 이해가 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①기쁨으로, 기쁨은 강요에 의해서 불가능한 것이다.[아무 도움도 없는 절망의 상황의 사람에게 ‘기뻐하시오!’ 한다고 기쁨이 되겠는가?] 공로 없이 구원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그럼으로 바울 사도의 “항상 기뻐하라”(살전5:16)는 강요의 내용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맛보며 살라는 당부이다. 나 같은 죄인이요 모자라는 인생을 무엇 때문에 구원하셨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하기만 하고 감사해서 기쁨이 충만한 것이다. 기쁨 역시 속에서부터 터져 나와야 가능한 것이다. ②구원의 우물들에서, 그냥 우물이 아니라 ‘구원의 우물들’이다. 또 우물은 그냥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계속 솟아나는 물로 마르지 않는 영원성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구원의 우물이다. 모든 사람이 아무리 구원을 길어내어도 바닥 나지 않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평안의 생수가 되신다. 여기서 우물이 複數(PL)인 것은 어디든지 어떤 일이든지 구원을 길을 수 있다는 데서 그렇다. 바울은 견고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면서 이를 증거하고 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③물을 길으리로다, 물은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 몸의 생기를 회복시키는 생명의 원천이다. 우리 영혼의 소생을 의미하고 평안의 회복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하셨고 요한은 곧이어 이를 설명하기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9f)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 되실 뿐 아니라 우리 기갈 된 영혼의 갈증을 늘 해소시켜 주시는 생명의 샘이시다.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도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것은 믿음의 백성들만 누릴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다.

Ⅳ.만국 중에 온 세계에 알리고 싶은 하나님.(4~6)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절대적 절망에서 쉽게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을 숨겨두는 것은 분명히 죄가 될 것이다.

내 입술로 고백되지 않는 한 기쁨이 아니며 구원이 아니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마12:34b)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1.구원과 기쁨의 확산을 의미한다.(4)“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2.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5)“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희생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다.

3.믿음의 백성들의 함께 드리는 찬양과 예배를 격려하고 있다.(6)“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을 힘입어 복된 인생을 살게 되기를 원하시고 기대하신다. 그러나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 문제까지도 몸소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해결하시고 기다리신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마다 이제는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의 주시는 구원과 도움과 생명을 노래하는 감격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죄와 절망에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감격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에 의지하고 자신의 날개 그늘 안에 피한 자의 평생을 책임지신다. 늘 힘겹고 고통스러운 사막 같은 이 인생 여정에서도 언제나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게 하신다. 먼저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맛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놀라운 감격을 확산시키고 세계 만국을 향하여 이 은혜에 초청하며 하나님께는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리게 된다. 오늘도 이 생명의 초청을 듣는 자마다 이 은혜에서 제외되는 자가 한사람도 없기를 주님의 복되신 이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