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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광
약 3:16~18 2019-10-06
성령의 9가지 열매 : 화평  
야고보서 3장 16~18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서론

화평의 뜻



화평은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로 샬롬(שלום)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ιρηνη)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인사말로 주로 사용하는데요. 그 의미로는 “안녕하세요. 평안하세요.”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주로 화평이라고 하면 영어의 peace 평화와 연결해서 전쟁의 반대 상황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 속에서의 화평은 더 넓은 의미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전쟁과 다툼이 없는 상황뿐만 아니라 전쟁과 다툼, 환난, 고난 가운데서 느끼는 평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3번째 열매 화평을 전하기 위해서 사과를 준비했습니다. 화목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데요. 우리들은 종종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사과를 합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비로소 화목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이 화평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는데 오늘 전해드리는 말씀 속에서 ‘나는 과연 화평을 누리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인가 해결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참 화평의 열매를 맺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론

오네시모 이야기

이번에도 성경말씀 속에서 화평을 이루는 인물을 찾고 우리들의 본보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성실하지 못하고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한 종이었습니다. 주인이 명령한 것을 잘 행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인 빌레몬은 종 오네시모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하루하루의 삶이 고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자 주인의 돈을 가지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방황하며 떠돌아 다녔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동안 종이었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나와서 일반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가난한 사람에서 부유한 사람까지 모여서 식사하고 대화를 한다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선생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그 주위에는 그의 제자로 보이는 사람들과 말씀을 듣기위해 자리 잡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언가 얻을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오네시모는 말씀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 선생 같은 사람의 입술에서는 구원과 생명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던 오네시모의 발 앞까지 다가와서 귓가에 이야기하듯이 설교하는 이 바울의 눈빛과 목소리는 모든 듣는 사람들의 심령을 휘어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교훈과 위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치 오네시모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듯한 음성이 마음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갑자기 오네시모는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때로는 모두가 잠을 자는 자정에 몸에 심한 열이 나서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을 때 자신을 업고서 의사의 집까지 뛰어가 치료해 주었던 주인 빌레몬이 생각났습니다. 오네시모는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자신을 뉘우치며 회개하였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끝난 후 오네시모는 그에게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 배우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바울은 따뜻한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고 일으켜 세우며 그를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비록 자신이 도망 나온 종이라는 사실이 금방 들통 났지만 바울은 질책하고 벌을 주기는커녕 마치 동생과 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자신을 제자로 받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종의 삶을 사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사랑을 그곳에서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모든 형제와 자매들이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른 종이나 귀족들이나 구분 없이 모두 형제라 불러주며 천사처럼 배려하고 위로해주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그들과 이곳으로 불러주신 주님께 드리기 위해 주인을 섬기듯이 정성을 다해 봉사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말씀을 듣는 중에 한 가지 마음의 찔림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밤마다 꿈속에 떠오르는 집주인 빌레몬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몇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바울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바울은 다행히 빌레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레몬도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을 위해 친필로 편지를 써서 먼저 보내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의 편지글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 편지글을 보면 오네시모가 이제는 함께 주안에서 형제가 되었음을 전달하고 있고 오네시모가 돌아가면 바울 자신을 영접하듯이 영접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오네시모가 빚졌던 모든 것까지도 다 갚아줄 것을 강하게 전하면서 바울이 곧 방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숙소를 마련할 것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화평의 사람이었습니다. 화목하고 평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떠한 죄인이 와도 그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도록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화평의 열매를 맺은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다툼과 분열이 있다면 이를 회복시켜주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오네시모와 빌레몬도 화평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 이야기

구약 성경에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심판을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사울에게 이야기하면서 그의 죄짓는 행위를 그만두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탕자 이야기

지난 번에 전에 드린 탕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효자식같이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치고 어려운 곤경에 빠졌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이 아무리 잘못된 길로 빠졌다 하더라도 끝까지 기다려 주고 돌아왔을 때 반겨주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갈라진 관계를 하나로 회복시키는 아름다운 예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그리고 말고 이야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있을 때에 가룟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그의 종들과 함께 횃불과 무기를 들고 예수를 잡으러 올라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무리들에게 예수를 넘기는 신호로 예수께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때 예수를 잡으려고 다가오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향해 시몬 베드로는 가졌던 칼을 빼어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라고 말씀하시고는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화평을 이루는 방법

우리들에게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화평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화평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먼저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지만 죄 가운데 빠져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마귀의 종이 되면 하나님과 절대로 화목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스스로 자백하고 회개한다고 해서 이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해 질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그의 모든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이루어 져야 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5)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졌다는 사실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시바랍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벧전 3:11)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결론



우리들은 오네시모나 사울, 그리고 아버지를 떠난 탕자 같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내 안에 죄악이 마치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것처럼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가 되고 서로 화목한 관계를 갖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 우리들은 배웠습니다. 갈라진 관계가 있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오네시모나 사울, 그리고 탕자와 같은 사람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들은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한 바울과 다윗, 탕자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은 화목의 씨앗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호관계가 성령이 주시는 온전한 화평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들 각자의 영혼에는 화평의 열매가 아름답게 무르익을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