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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 17:13~19 2021-02-28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지난 주부터 이 땅에 33년의 생애를 서서히 마무리하시면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루실 구속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전하고 펼칠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서 상고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제자들이 자신의 인류를 위한 대속의 역사 속에서도 실족치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면 오늘의 내용에서는 그들이 세상에 있지만 타락한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 같이 그들도 거룩 되게 구별하여 보존해 줄 것을 간구 드린다.

오늘은 이를 위해서 주로 세가지 기도의 제목을 듣게 되는데 이것은 여전히 오늘도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요 하나님의 집이면서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되 반드시 경계해야할 기본 자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당시의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끝임 없는 반대와 어려움을 당하셨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증거하시면서도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제자들 역시 기쁨으로 이 과제를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복음이 비록 세상을 위한 것이지만 죄악 된 세상의 방법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악에서 지켜 주실 것에 대한 기도로 그들이 이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이제까지 와는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방법과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시는 제자들에게 거룩함을 유지하고 생명의 확산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 되시는 말씀과 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함을 고백하신다.



Ⅰ. 세상의 미움 속에서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13~14)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이유를 고백하시는 내용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13f)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항상 그러셨듯이 마음으로 영혼으로 아버지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계셨던 시간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그대로 고백하신다.

이 기도가 끝나고 잡히셔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에게 끌려가셨다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시는 과정을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다보시며 이 기도를 드리고 계신 것이다.

불과 하루도 남지 않은 시간에 육신을 벗으실 것을 고백하시며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13m) 복음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실 것이지만 구속을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는 그 일에 있어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그대로 고백하신다.

그럼에도 여기서부터 세상의 원리는 이미 넘어서고 계시다.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3b) 이 말씀이야 말로 천국을 담은 사람의 특별한 모습이라고 보여 진다.

앞에 훤히 보여지는 고난과 수치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보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쁨을 넘치도록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주어진 일이나 과정이 어떠하든지 기쁨을 충만이 가질 수 있으셨던 우리 주님의 일상의 모습이셨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중에서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해와서 드리자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2, 34) 하셨는데 기쁨도 마찬가지였음을 오늘 이 말씀이 가르치고 있다.

사역기간동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신 바 있으시다.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막1:11; 눅3:22) 하셨고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나타남 후에 제자들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마17:5) 하심을 보았다.

이렇게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심을 배운다. 오늘 우리의 기쁨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기쁨을 주님께서 증거하신 것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하신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의 자연적인 권면이 “항상 기뻐하라”(살전5:16)는 확인이다.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음에 기쁨을 가지는가 묻고 싶다.

세상을 하직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남겨두시는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3b) 기도하신 것이다. 이 소원이 여러분들의 삶에 주님의 기도대로 실제적인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

다음으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4) 하셨다.

우리는 다음 두번째 제목에서도 보겠지만 앞에서 이미 15:19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는 말씀을 나눈 바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14f)라는 이유여야 한다. 즉,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가지고 사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행복이다.

베드로 사도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하였다. 세상은 다 그릇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의를 행하며 살고, 세상은 미워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사랑하고, 세상은 이권에 따라서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줌으로 그들과 다른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들은 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14f)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14b) 라며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의식 또한 그리스도인이면 항상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는 나그네이지만 천국에서는 절대로 임시로 거쳐가는 나그네가 되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천국의 백성 된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지만 천국의 영원한 시민권을 당당하게 누리는 …



Ⅱ. 지속적으로 하늘에 속한자들로 보존해 주소서(15~16)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사는 이유를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2~13)라고 바울은 증거한다.

중세부터 경건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죄가 범람하는 세상과 접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 만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세상밖의 공동체운동을 주창했고 이것은 우리 나라의 어떤 종파들도 그렇게 믿고 모든 삶의 필요를 자신들의 구성원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모든 종류의 삶의 도구들을 스스로 생산하고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주님의 기도는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15) 라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낸 자들의 공동체이지만 불신자들과 단절하여 보이는 세상밖으로 살라는 의미가 아닌 것은 복음은 바로 이 세상의 죄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5:10)는 바울의 권면도 다르지 않다.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b) 이 부분에서 우리 성경은 이해를 위하여 ‘빠지다’를 첨가하여 강조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본래적으로는 “오직 악으로부터 지키시기를 위함이니이다”로 “세상의 죄의 진창에 섞여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키셔서 세상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계시다.

이제 그 이유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6) 라고 고백 드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앞에서 수없이 말씀하셨듯이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오신자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3:13, 6:33,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38, 41, 50, 51, 58” 증거하신 바 있다.

이렇게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16f)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늘로부터 이신 것처럼 그 주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라는 이유에서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던 것이다.

적어도 이 소속의 개념이 분명할 때 우리의 삶의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스스로에게 항상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왕자요 공주라면 그 품위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임시로 거처가는 나그네이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돌아갈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의 백성’이라면 영광의 광채; 천국의 품위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에게 낙심이 될 때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너는 이 썩어지고 죄악 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에 돌아갈 하늘의 왕자(공주)’라는 인식을 늘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Ⅲ.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17~19)

어쩌면 오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또 주님의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지켜지고 세상의 죄악의 오염으로부터 생명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 앞의 v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는 귀중한 생명의 말씀에 버금가는 또 다른 진리의 교훈이다.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하게[ἁγιάζω, 깨끗하게 하다, 성별하다, 숭배하다]”는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 도구 역시 세상의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은 세상이 모두 죄의 오염으로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17f) 주문하신 것 자체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미 이 요한복음에서 수없이 언급된 진리에 대한 교훈들을 살폈기 때문에 “진리[ἀλήθεια, ← ἀ(부정)+λήϑω=λανϑάνω(숨기다) ἀληθής, 잘못의 반대, 참되다, 참되게, 진실성, 사실]”가 무엇인가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진리야 말로 죄인 된 사람을 죄의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하게 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 진리를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주님과 같은 판단은 OT 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시119:160, 142율법은, 151계명들은)

그럼으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요 이것으로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이나 종교, 또는 금욕(禁慾)을 도구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사람의 모든 방법은 제외되고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만 가능함을 말씀하신다. 누가 묻기를 ‘사람의 교육은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없나요?’ 한다면 적어도 성경적인 견해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있다. 성경은 사람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는 약속이야 말로 유일한 복음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8) 하셨는데 지난 주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는 v8b에서 이 내용을 나눈 바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신 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선포하신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증거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우리와 꼭 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시고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신 의향 즉,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모자람없이 이루시고 가시면서 그 완성된 복음을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그냥 일반적으로 나열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같은 역할의 도전을 주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모두 성취하셨고 다시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 역시 자신들이 생명을 바쳐 맡기신 사명들을 감당하고 갔다.

예수 그리스도나 그의 사도들이 다른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와 꼭 같은 죄악 된 세상에 보내심을 받고 기대하고 바라시는 바를 이루어 드렸다면 이제 이 마지막 시대에 그 바톤(baton)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늘 마지막 절인 v19에서는 다시 한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v17의 비슷한 말씀을 반복하시는 듯하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

이 두 곳의 말씀 모두의 중심은 “거룩하게 하옵소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 그리고 그 도구는 두 곳 모두 “진리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한결 같은 소원이 바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이미 앞에서 10:36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라고 자신의 거룩하심을 선언하신 바 있다. 그것은 이 마지막 v19f는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하심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거룩하시다는 목적을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 안타까운 것은 사람은 스스로는 절대로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는 한결같이 변할 수 없는 “진리로”임을 말씀하신다.

사람에게서 나온 최고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철학(哲學, φιλοσοφία)이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 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하여 이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을 증거한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철학은 한결같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계속 그 중심이 바뀌었다(신, 사람, 자연).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당부하신 것처럼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끌어내신 것은 세상의 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닮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이끌어내셨다고 증거하신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도 이 귀한 하나님의 기대를 채워드리지 못하여 흩어지고 다른 나라의 종이 되는 안타까움을 역사속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에 따라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고 이 그리스도를 순종함으로 사람들을 구별하시기를 원하셨다.

십자가의 구속을 완성하신 후에 다시 그의 백성 된 사람(우리)들을 향하여 같은 당부를 주신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 세상과 다른 삶을 기대하신다.

제자들을 위한 이 주님의 기도도 당연히 최종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순종하며 살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주님처럼 기뻐할 일이다.

우리의 믿음 생활 때문에 세상에서 불편하고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세상이 우리를 통화여 같은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사람들끼리 만이 아닌 이 세상속에서 의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죄인 구원의 귀중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주신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거룩한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하신 성령과 성경말씀을 지속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도전하여야 에베소서4:13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