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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요 6:1-13 2002-11-24
떡과 고기를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고 때로 많은 사악한 정치가들은 먹는 것을 미끼로 사람들을 부려 온 것도 긴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굶주림의 빈곤은 있을 것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된다. 마26: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14:7; 요12:8)

오늘도 이 지구촌의 어느 구석에서는 주린 배를 쓰러 내리며 잠을 자지 못하고 허기짐으로 고통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창조주시라는 것을 보여 주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전능하신 능력의 혜택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소위 오병이어(五餠二魚)라고 명명되고 있는 이 사건은 또한 예수님 자신이 곧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양식)이시라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낸 위대한 비유로서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주신다는 것을 표적을 통하여 보여 주신 것으로 요한은 이 오병이어에서부터 예수만이 사람이 영원히 먹어야할 생명의 양식이 되심을 긴 설명으로 이해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Ⅰ.빈들에 거하는 인생에게는 언제나 굶주림이 따라다녔다.(1~4)

좀 차이가 나는 것은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먼저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5b) 라고 기록되고 있지만 공관 복음에서는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마14:15; 막6:35~36; 눅9:12) 라고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공관복음에서 제자들이 동일하게 예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마, 막); 우리 있는 여기가 빈들이니 이다(눅)” 라는 고백이다.

아담이 범죄 한 후 사람들은 에덴에서 내어 쫓겨나 빈들에 거하는 인생들이 되고 말았다. 늑대와 이리가 울부짖는 공포의 땅이요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의 땅 그러한 땅에서 이마에 땀을 흘려보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운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야행성 맹수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추위가 엄습해 오는 저물어 가는 빈들, 이것이 인생의 삶의 현장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핍절한 빈들, 그것이 하나님을 외면해버린 인생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모든 것을 탕진한 체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 하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버린 모든 사람들의 가장 사실적인 모습이다.

본문에는 시기적으로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4)고 요한 사도는 적고 있다.

결국 항상 만족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한 때라도 만족해 보자고 명절이 있고 그런 속에서 더욱 뼈저리게 상대적인 박탈 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유월절은 자유의 기쁨을 마음껏 음미하는 절기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더욱 깊이 경험하는 이스라엘의 절기이지만 진정한 신앙의 맛을 잃어버린 군중들은 유월절이 가까웠음에도 여전히 비들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주님은 그 무한한 긍휼의 눈으로 저들을 그윽이 바라보신 것이다.



Ⅱ.그 잃어진 인생들, 굶주린 인생들을 먹이기 위해서 주님은 오셨다.(5~6)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1.주님은 잃어진 양들의 목자로 오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모든 인생들은 진정한 목자를 잃어버린 양들로서 이 광야를 거쳐가는 나그네들이요 인생의 고달픈 걸음과, 추위와 더위가 교차하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영혼과 육신의 기갈로 인하여 굶주려 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소수의 세상 기득권자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은 부요와 만족에서는 언제나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광야를 정처 없이 헤매는 버려진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저물어 가는 빈들 같은 세상에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5)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알아보고 나아 오는 자들을 주님은 절대로 외면치 않으신다.

빈들에 무엇을 위하여 모였는가? 오직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해서 좇아 온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의 육신도 굶기지 않으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2.주님만이 인생의 진정한 문제를 아시는 분이시다.(5b~6)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공관 복음에서는 한결 같이 “너희가 먹을 5것을 주어라!”(마14:16b; 막6:37f; 눅9:13f)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결코 떢 한가지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들이요[마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육신의 빈곤도 주님 외에는 채우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신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구약의 역사에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동안 빈들에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굶주리지 않았던 것은 광야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었음을 본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은 늑대와 전갈의 처소 같은 이 광야, 우는 사자들이 삼킬 자를 찾는 것처럼 마귀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벼르는 이 험준한 이 빈들에서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한 보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고 사는 양이라는 사실이다.



Ⅲ.작은 순종과 헌신이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했다.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신앙은 실험으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확인되어지는 것이다.(7)

빌립은 대단히 실험적인 사람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6~7) 말씀하시는 주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 했던 빌립은 이번에도 그답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 라는 계산적인 실험정신을 내어놓는다.

2.기적은 언제나 작은 헌신과 순종을 필요로 한다.(8~9)

①안드레의 기도의 모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사실적인 보고를 본다. 어떤 것이건 사람이 가진 것은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인간이 자연적으로 키울 수 있는 것도 30배, 60배, 100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실 때는 수로 계산되어질 수 없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②어린아이의 희생, 가장 초라한 식사, 종일 군중에 속하여 말씀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만은 이 초라한 식사를 아직까지 비우지 않았고 주님 앞에 배고픔을 참으면서 기꺼이 내어놓는 단순하고 순진한 어린아이의 믿음이 여기서도 확인되어지고 있다. “그것 내놔 버리면 나는 허기져서 집에 돌아갈 수 없어요, 나에게는 떡을 살만큼의 용돈도 없어요” 이런 구구한 변명이 나올 법도 한데 이 어린아이는 예수의 요구도 아닌 제자 안드레의 요구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③이 순종과 헌신을 받고서야 베푸신 주님은 식탁,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10)

이러한 당부는 사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돌을 옮겨놓으라는 명령만큼이나 도전 적인 것이었다. 남자만 5천명, 최소한 2만 명의 무리를 떡 먹이겠다고 앉혀 놓고 기적이 안 일어나면 어쩌려고..., 이러한 행위는 사실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결단이었음을 본다.



Ⅳ.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전한 인생을 충만으로 채우시는 분이시다.(11~13)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축복하시는 주님이시다.(11f)

어린아이의 작은 헌신에 축복하시는 주님이시다. 가장 초라한 식탁에 주님의 축복은 가장 큰 만족으로 축복하시는 주님이시다.

2.원대로 주시는 분이시다.(11b)

하나님께서 주실 때는 감질나게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풍성’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채우심과만 통하는 말이다.

3.그러나 기적을 남용하거나 허비하지 않으신다.(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주님께서 기적의 부스러기를 거두시는 데도 순서가 있었다. ①배부른 후에 ②남은 조각을 거두고 ③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4.보다 근본적인 양식은 육신의 필요가 아니라 영적인 양식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고 계시신 교훈이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48~5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53~57)



Ⅴ.결론.

빌립의 너무나 인간적인 계산, 안드레의 회의적이면서도 은근한 제안은 그 생각하는 이상이 될 수 없지만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순종과 희생"을 통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으심으로서 하늘의 신비한 세계의 일면을 우리에게 보이셨던 것이다. 그들(제자들)은 다소 믿음의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희미하고 엷은 믿음은 순종으로 충족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되심을 드러내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순종은 믿음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열쇠요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최상의 방법인 것을 깨닫게 하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빌4:19) 하나님이심을 또한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의 순종과 이름 없는 어린아이의 헌신이 있었고 이 작은 희생의 대가로 완벽한 하늘의 권능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는 말씀의 확인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범죄 한 인생에게 결코 만족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히 채우실 수 있는 창조주요 구세주이시다. 이 주님을 향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떡(요긴한 것들)과 고기(만족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를 원대로 받는 나와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