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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계 2:18~29 2003-01-12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두아디라[Quavteira, Thyateira]는 아시아의 일곱의 교회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였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일곱 교회 중에 가장 긴 편지가 보내지고 있는 것은 역시 극진한 주님의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아디라는 일찍이 염색 기술이 발달하여 염색된 자주 옷감 같은 것들은 마케도냐와 유럽으로 수출이 되었고 빌립보에서 바울을 통하여 강가에서 전도된 루디아라는 여인이 바로 이 두아디라 출신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행16:14) 뿐만 아니라 염색업자들로 구성된 조합 같은 것들이 발달하여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염색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업을 거의 할 수 없고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두아디라에서 윤택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합에 가입해야 하고 이 조합의 운영자들은 주로 아폴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조합 회의 같은 것이 아폴로 신전에서 열리고 회의 후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는 물론이고 제사 의식과 함께 행해지기도 하고 만찬이 끝날 즈음에는 여 사제들을 통하여 음행 하게 하는 것이 순서가 되었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러한 가운데 빠져서 건전한 신앙을 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문에서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처럼 모든 이권을 던지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두아디라에 나타나시는 주님의 모습은 음행과 불륜에 분노하는 불꽃같은 눈과 제우스신의 아들인 사랑과 음악의 신이라고 하는 아폴로 신을 많이 섬기고 있는 이곳에 참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18) 발은 어디든지 밟기만 하면 부수어지고 불타버릴 빛난 주석으로 역시 심판과 진노의 모습이다.



Ⅰ.성장하는 교회였다.(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대단한 칭찬이다. 에베소 교회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는 처음보다 점점 낙후되어 가는 반면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라고 칭찬하시는 것을 보면 대단히 바람직한 교회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했는데 사업이란 당시의 두아디라의 염색 사업이나 조합의 일이 아닌 요한복음에서 기록하는 “예수의 행하신 ‘일(ergon)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로 번역된 영적인 사업 즉, 영혼 구원의 일을 의미한다. 두아디라의 성도들은 세상의 사업보다 영적인 사업을 귀중히 여기고 또 잘 수행했던 것을 주님께서는 칭찬하신다.

책망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부분 부분을 칭찬 받고 있는 모범을 주님께서는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신앙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감성적, 感性的)은 가자 귀중하고 영원한 믿음의 열정이 먼저 언급되어지고 있다. 이들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뜨거운 성령의 가슴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믿음(이성적, 理性的)은 본래 하나님의 선물로 범죄한 인간에게는 자연히 생길 수 없는 거듭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엡2:8) 소망(의지적, 意志的)은 여기에서는 인내로 표현되어지고 있지만 행동하는 신앙의 이유로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깊이 신뢰함으로서만 가능한 부분이다.

이러한 인격적으로 고루 성장한 신앙으로 “섬김”은 자연스럽게 감당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의 신앙은 고루 고루 균형적인 성장을 하였고 이것이 처음보다 오히려 나중이 더 성장했다는 말씀이다.



Ⅱ.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었다.(20~23)

어느 시대에나 교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위와 같이 대단히 아름다운 신앙의 소유자들이 두아디라 교회에 있었는가 하면 주님께서 기쁘게 보실 수 없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이 교회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모범된 신앙의 모습들을 보면 배우고 깨닫고 회개해야 함에도 교회에는 들어왔으되 하나님 불꽃같은 눈으로 보실 수밖에 없는 아직 세상의 사람과 전혀 다름이 없는 이름뿐인 사람들이 언제나 주님을 슬프게 한다.

1.책망의 내용.(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자칭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머나 교회는 자칭 유대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여기서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범죄케 하는 신앙의 지도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검증해 주지 않은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평가되지 않은 “자칭” 스스로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10:12) 라고 자칭의 사람들을 책망한 적이 있다.

이방 신을 섬기는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이라는 여자의 문제점은 자신만이 하나님을 거역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간악한 왕이었던 아합을 움직여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바알 우상에게 돌아서도록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을 살찌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씨를 말리려고 했던 역할이다. 성경은 이를 평가 하기를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왕상21:25)

2.회개의 사랑. 그럼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즉각적으로 심판해 버리면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나 더 쉬울 것 같은데 사랑의 하나님은 그렇게 못하시는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회개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회개치 못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가 없다.

3.회개를 거절하는 자에 대한 형벌.(22~23)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음란의 침상은 회개치 않으면 병상의 침상으로 변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심판은 당연하다.

4.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다.(23b)



Ⅲ.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순결한 남은 자가 있었다.(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1.순결한 신앙의 사람들. ①이 교훈을 받지 않은 사람. ②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2.그들에게 주는 약속. ①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다. ②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Ⅳ.이긴 자에게 주시는 상급.(26~29)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주님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22:16)



Ⅴ.결론.

두아디라 교회는 무속적이며 세상과 조화하고 적당히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 사이를 오가는 타락한 교회의 전형이다.

1.사랑과 신앙을 겸한 교회와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리를 철저히 지키다 보니 사랑을 잃어버린 차디찬 교회가 되었고,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을 적극 실천하다보니, 거짓 교사까지 사랑으로 받아들여 교리를 잃어 심판의 경고를 받았는데, 주님께서 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 사랑을 잃지 말고 교리도 철저히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이다. 사랑의 따스함과 진리를 분별하는 냉철함이 겸비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이어야 한다.

2.세상의 우상이나 죄악과 타협치 말라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우들이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우상 섬기는 자들과 함께 조합에서 연대하여 그들과 주님보다 더 깊이 교제를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일이 없으면 교회 오고 바쁘면 교회 못 오는 주님보다 세상이 가까운 사람들은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교회는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과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면서 오히려 교회를 세상의 영화에 이용하는 두 부류의 신앙인들이 있다. 과연 나는 교회의 두 부류에 어떤 사람들인가? 여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