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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배 전도자
계 3:7~13 2003-01-26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필라델피아[Filadevlfeia(Philadelpheia, 형제우애) = fivlo"(philos, 사랑하는) +ajdelfov"(adelphos, 형제)] 교회는 BC 2세기에 형을 사랑한 동생인 앗탈루스 2세가 형을 사랑하여 도시를 지어 ‘형제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특이한 그 도시의 탄생 배경 자체가 깊은 감동을 가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는 신앙적 사랑의 공동체로서 천상의 위로와 격려로서 어려움을 이기게 하고 고난을 견디게 하는 모범을 이름에서부터 느끼게 한다.

이곳은 지금도 비록 모슬렘 이름이지만 ‘하나님의 도시’ 라는 뜻의 ‘알라 쉐르’란 이름으로 터키에 존재해 있고 모슬렘이 터키에 물밀 듯이 들어 올 때도 가장 강하게 대항했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교회에 나타나는 주님의 모습은 1장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상으로 나타난다. “①거룩하고 ②진실하사 ③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④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7~8) 이것은 필라델피아 교회가 본받았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성도의 바른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자신의 백성을 향하여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하셨고 신약성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69)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는다. 이것은 분명히 성도들의 성별된 모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그대로 이해하게 된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죄악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모습이었고 하나님의 참되심과 같이(롬3:4 …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진실 된 모습에 합한 성별의 모양이요,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명한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딤전5:22b) 거나 야고보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b)는 주님의 성품을 가진 성도의 모습에 합하여 나타나시는 모습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분명히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과 같지 않는 모습을 잃지 않은 필라델피아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또한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요구하신 신앙의 자세이다.

그러한 신앙의 정절을 가진 사람들에게만이 다윗에게 약속된 영광의 메시야 왕국, 새 예루살렘은 확실히 열려 있고 막히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품을 잃지 않은 정결한 신부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에 의하여 천국의 열쇠는 지켜지고 열려 진다.

오늘 우리 자신과 교회가 거룩하고 진실된 주님의 신부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들에게만이 주님은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7, 9)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Ⅰ.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는 반드시 능력이 커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8b)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서머나 교회가 순교의 교회로 칭찬을 받은 교회라면 필라델피아 교회는 신앙의 정절을 지킨 인내의 교회였다. 즉, 전자는 아벨과 같은 형태의 교회였다면 이 교회는 에녹형의 교회였다. 생명을 요구하는 위기 앞에서는 이 땅의 생명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변절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은 더 귀중한 믿음이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세상적인 권세나 물질의 부요나 무력 같은 힘으로나 영적 은사의 권능으로 믿음의 정절을 지킨 것이 아니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였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받았으면서도 바로 사용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듣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靈肉간에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서 능력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일은 그렇다. ⓑ고린도 교회의 교훈을 확인한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와 능력이 풍성한 교회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과 혼란이 많았고 오히려 책망을 받고 있다. ⓒ충성과 헌신만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말과 “충성”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같은 단어이다.[믿음, pistis, 충성, pistos ← peitho] 결국 믿음을 바로 가졌다는 것은 충성된 자를 의미하고 충성된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복되신 십자가에 자신을 버리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이름을 배반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훈련된 인격이다. 들뜨고 부푼 가슴은 쉽게 가라앉는다.



Ⅱ.거짓과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고 보상된다.(9~10)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이 땅에서는 정통적인 이름이 우세 할 수 있다.

언제나 거짓된 사람들이 문제다.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서머나 교회에서도 “…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2:9) 어느 시대에나 자신이 정통이라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진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배척을 받았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연약한 모습보다는 언제나 하나님의 평가를 의식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바울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기를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라고 격려하고 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시는 사람, 하늘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진실 한 자들 편이다. 거짓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시대마다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거짓을 행하는 자들의 그 거짓을 역성들지 않으시는 분이다. 다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오늘도 내가 진실했다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당장에 보상받지 못하고 어떤 경우 땅에서는 오히려 진실 된 사람들이 현 사회에서는 어리석게 취급받을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는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그래 야지 융통성이 없으면 세상 어떻게 살아?”라거나 “믿음과 세상의 삶은 별개야 적당히 조화를 해 가면서 사는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말에 기죽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사람으로 바르게 살려면 어리석게 취급받는 것을 두려워해서 진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은 분명 사탄의 속임수이다. 분명히 세상에서는 거짓과 요령이 더 편리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래 어떤 경우에도 진실 하라, 내가 너를 인정한다!”라는 격려를 하고 계신다.

3.현실에서 고난을 이기면 미래에는 영광뿐이다.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인내[hypomone, (즐거운, 희망찬) 인내, 지속, 견딤]의 말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 즉, 진리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이셨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6)

역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 한 선지자들도 모범이었다고 증거 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5:10)

현실 속에서 거짓과 위협이 괴롭힐지라도 진리를 지키는 가운데 소망의 위로를 가지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믿음 생활이다. 그리고 현질 속에서 당한 불이익과 고통의 눈물은 그것이 믿음을 위한 것이었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갚아 주시고 위로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바로 굴복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언제나 장래를 기약하는 인내가 진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신앙은 언제나 영원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아버지께서 영광의 날에 반드시 우리를 거짓으로 위협하고 괴롭힌 사람들을 우리 앞에 굴복시키실 것이다.



Ⅲ.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주님은 속히 오신다. 형벌을 받을 자에게도 위로와 상급을 받을 자에게도 속히 오신다. 이 계시록에서 주님은 두 가지 모양으로 속히 오심을 표현하고 계신다. “내가 네게 임하여”(2:5, 16), “내가 속히 임하리니” 위로와 영과의 복을 가지고 오시는 모습이다.

2.나에게 조금이라도 진실 된 것이 있다면 결코 놓아서는 안 된다. 신앙에 내어놓을 만한 나만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견고히 잡을 필요가 있다. 믿음을 굳게 잡는 것은 영광의 면류관을 굳게 잡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도 같은 약속을 주셨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25)

3.하늘의 영광의 약속을 잊지 말라. 신앙은 자주 경주자에 비교되고 있다. 함께 천국을 향해 가면서도 또한 각자가 면류관을 얻도록 최선을 다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내가 상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른 충성된 자가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다른 어떤 세력이나 사람이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을 경계하시는 말씀이다.



Ⅳ.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보상.(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필라델피아에는 지금도 무너진 디오니수스 신전들의 잔해로 큰 돌기둥들이 서 있어서 이 말씀이 실감이 난다고 한다.

열왕기상 7:21의 솔로몬 성전에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대하3:17)

갈라디아서 2:9는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기둥은 원인이다. 네가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어라!

2.기둥은 결코 요동치 않는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다 무너졌어도 기둥들이 서 있는 지금의 필라델피아 유적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3.그것은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이다.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 든가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는 약속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누림을 가르치심이다.



Ⅴ.결론.

세상에서 재물이나 권세의 풍부함이 하늘의 신비한 능력을 많이 가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을 이어 오는 인간의 이름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진리를 지키는 구별된 사람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짓과 진리를 반드시 드러내시고 거기에 대해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신앙적으로 훌륭한 부분이 있다면 새로운 어떤 것을 해보겠다는 욕심보다는 그것을 잃지 말고 끝까지 굳게 잡을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를 늘 존재의 원인으로 세우시기 때문에 이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 되어라. 주님의 것으로 이름 새겨진 기둥 같은 존재로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