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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겔 47:6~12 2004-03-07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소성함을 얻겠고...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계22:1)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5) 물이 깊으면 바닥을 걷기가 어렵고, 은혜가 깊을수록 인간을 자신을 부인하게 된다.

“소성(蘇醒)” 또는 “소생(蘇生)”[ap;r:, Rapa, 본래 의미는 (꿰매서) 고치다, 치료하다, 낫다(~게 하다), 수선하다, 철저히-온전하게 하다; qerapeiva - Therapy, (의학적으로)치료]

본래 하나님께서 복 주셨던 에덴에도 네 강이 발원하여 땅을 적시므로 복되게 하셨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st 비손, 2nd 기혼, 3rd 힛데겔, 4th 유브라데”(창2:10~14) 물은 언제나 생명이며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영혼을 살게 하는 신비한 생명의 근원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라고 말씀하신 것도 무관하지 않다.

에스겔의 사역 시기에는 황폐화 되고 허물어진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참담함을 봐야만 했고 그의 책 서론 부분에서는 이러한 현실의 안타까움과 한탄어린 고백들을 더러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이상은 소망적이었고 비록 죄로 인해서 멸망 당했지만 회복 시키시리라는 이상을 에스겔 37장에서는 마른 뼈들의 생명 회복을 경험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다.

Ⅰ.왜 모든 것들이 일그러지고 파괴되었는가?

에스겔의 예언의 시기는 바벨론 포로의 아픔을 겪으면서 절망에 있는 이스라엘을 안타까워 해야 했던 고난 속에서 약속의 민족 선택된 백성에게 이런 엄청난 아픔이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한탄을 하면서도 절망에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안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비단 에스겔 시대만이 아니었다. 애굽에서 쓰라린 종 노릇의 고통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도 불구하고 있었고 이것이 인간의 고통의 시작은 아니다. 에덴 이후 세계 도처에 비극적인 일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가난과 질병 같은 저주스러운 운명은 계속적으로 유토피아의 낙원을 갈망하는 인간 사회에 만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도 후진국에도 미국 같은 선진국에도 결코 비켜가지 않는 모든 인류의 운명처럼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고, 모두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지만 공포를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많은 정치가들은 소망적인 미래를 약속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약속을 지켜 주지 못하고 있고 국가 정부는 수많은 복지 정책을 내 놓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약속이 무색하리 만큼 사정들은 반대 현상으로 더 활발히 진행이 되어서 나라마다 가정마다 비극은 끝내지 못하고 있다.

1.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아름 다운 것들에 영원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극의 순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으로 얼룩지는 인류의 운명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아니며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보시기에 좋은 것들 뿐이었고 이것이 세계창조의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열국 중에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는 것도 주님의 의도는 분명히 아니다. [신28(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15)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41)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삶을 어두움과 좌절로 끌고 가는 원인은 결국 創造 主요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등지고 스스로 왕 노릇 해보려는 인간의 사악한 욕심에서 연루 된 것이다.

2.인간의 어떤 노력도 회복이 불가능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미제의 문제로 남아 있다. 과학의 최첨단에 서서도 이것만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요 많은 역사 속에서 소망적인 기대를 갖으면서도 역시 불가능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성경이 선언하는 죄의 대가라는 사실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간의 모든 조화를 깨뜨리고 가장 잔인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싫지만 이것은 결국 우리 각자가 불러들인 것이고 그렇게 선언하시는 우리의 생명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 말씀의 해결책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되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이 모든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것들은 결국 죄와 연결되어 있고 꼭 같은 죄의 무개에 짓눌려 있는 어떤 사람도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 결국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회복은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악화 될 수 밖에 없고 그것 모두는 긴 역사 속에서 죄와 연결되어 있기 대문에 사람에게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Ⅱ.그리스도의 갈보리의 피로만 회복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죄의 문제를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에 창세전부터 대비책을 마련해 두신 것이다. 골고다 십자가위에서 흘려진 주님의 보혈이 흐르는 데마다 생명 회복의 역사는 일어나게 된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계22:1)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4~16) 십자가는 곧 피흘림을 의미한다.

202: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우리의 예배의 중심도 복음의 핵심도 갈보리 언덕에서 흐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Ⅲ.이것은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로 완전히 회복하실 것이다.

약속을 가진 백성들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반드시 완성될 것을 예언하고 있지만 이러한 약속은 아직도 미래적이다. 예언된 메시야의 탄생은 이 약속 성취의 시작에 불과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보다 미래의 책인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백성들이 들어갈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요한은 계시로 보게 된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이야사를 통하여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65:17) 라고 선언한 이사야는 모든 피조물들의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확신시키신다. 우리 모두는 그 날을 사모하며 죄인으로 살기가 더 쉬운 이 거친 세상을 진실로 살고 믿음과 고난으로 산다.

Ⅳ.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흐르게 해야 한다.

이 놀라운 약속을 동일하게 받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제 우리를 통해서 흘러야만 한다. 우리의 마음 마음들을 통하여 우리의 걸음 걸음을 통하여 흘러야 한다. 우리의 행하는 곳에는 언제나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

1.주님의 모든 피조물인 세상 모두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흘러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죽어 있는 어떤 것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을 향해 사람을 향해 죽어 있는 양심을 살리며, 죽어 있는 관계를 회복 시키며, 미래에 대한 절망을 소망으로 회복시키시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다. 그 생명의 피를 막히지 않도록 흐르게 하는 것이 우리 먼저 부르심을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사명이며 그 교회의 구성원들인 우리 각자의 사명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 잉태의 능력이요, 신비이다.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곳마다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9)

복음 증거의 대상은 사실 모든 피조물이다. “And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막16:15)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모든 피조물의 머리로 삼으시고 피조물들로 하여금 복종케 하셨다.(롬8:20) 로마서8:19~22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그러므로 피조물의 우두머리인 사람이 예수의 거룩한 피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물을 다스려야 자연만물도 회복되기 때문에 먼저 인간회복(人間回復)을 시작으로 하는 것이다. 최초의 창조 질서는 평화와 화평이었고 아담이 범죄 함으로 이 조화는 깨어져 짐승이 사람을 상하는 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

좀 더 많은 인류가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은 오늘 주님의 사람들의 역할에 관련되어 있다. 나와 가족과 현재의 교회만 온전하면 이라는 독선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십자가에 흘려진 예수의 피의 역사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미치기를 기대하시며 그러한 거룩한 소원은 그의 자녀로 피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들도 동일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늘 그의 신부된 교회와 우리에게 가지는 기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13:1[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내가 먼저 씻음을 받았다면 성한 내가 다시 죄의 진흙탕에 만신창이가 된 더러운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피에 불러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들에 보혈의 은총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건강해야 한다.

2.무엇보다도 주님의 몸인 교회에 보혈이 잘 흘러야 한다.

고린도전서12:12~27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0:17)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4:16)

오늘의 시대에 한 사람의 육신의 동맥경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動脈硬化이다. 이 말이 사뭇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흐르는 혈관에 다른 것들이 싸여서 피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으로 결국 약한 실핏줄이 터져서 건강을 잃게 되는 비극의 시작이 ‘동맥경화’ 라는 요즘 흔한 질병이다. 결국 혈류장애, 혈전 형성, 뇌졸중, 심근 경색 따위의 주 원인이 되고있다. 왜 사람들의 몸에 동맥경화는 생기는가가 꼭 같은 원리로 우리 교회의 불구의 원인이 되고 있다. ①바르지 못한 식사습관(먹어야 될 것을 먹지 않고 경계 되는 것들을 섭취하는 것이 원인이다.) ②원활한 운동의 부재(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것들)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의 동맥경화 현상이 심각하다. 우리 서로가 같은 피가 잘 흐르고 있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참으로 교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이 원활하게 흐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름뿐인 한 몸이 될 수도 있다. 동맥경화의 결과로 뇌졸중이 되면 결국 우리의 한쪽 지체는 마비되고 끌고 다녀야 되는 상황에까지 가게 되는데 말하는 것이 기쁘지 않지만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고 만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덩치는 거대하게 크면서도 생명의 이유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는 지체 장애를 가진 모습들이 늘어가고 있다.

참으로 우리 서로가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같은 몸의 지체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동맥경화이기 때문이다.

3.우리 각자의 삶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원활하게 흐르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교회요 더 가까이는 나 자신이다. 이러한 교훈도 결코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피 흘리심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보이는 피가 아니오 영적인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11:8) 사실 미래의 약속은 알지 못하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꺼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놀라운 약속을 확실히 본 믿음의 사람은 이제 이 세상의 가치를 하늘로 돌리게 된다. 세상의 가치와 비교될 수 없는 영원의 가치를 위하여 바라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사는 우리들이다. 우리 각자가 소성 시키는 예수의 보혈을 잘 흐르게 하자.(삶에 교회에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