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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요일 3:10~17 2004-03-14
형제를 사랑함으로 생명에 들어간 줄 알거니와...  
바울 사도는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묘사한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구성원 모두를 한 가정의 가족으로 대우하라고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것을 듣는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1~2)

그러나 오늘날 가정 붕궤의 비극으로 가족개념 자체가 흐려지고 지구촌이라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개인주의가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지구촌’ 이라는 그럴싸한 말은 개인주의를 합리화하는 방패막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좋지 않은 서구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들이 더 심한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의 기록을 두 군데 보면 마태복음12:46~50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막 3:31~35) 는 기록을 통해서도 주님은 혈연적인 형제관계보다도 영원에 결속된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지적하시고 게시는 것을 읽게 된다.

마찬가지로 바울 사도는 신앙의 행위에 대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속의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룰 것을 경계해 주고 있는 부분을 여러 말씀들에서 보게된다.

로마서14:10~21에서는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고 말하고 다시 고린도전서8:11~13에서는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같은 우려를 주고 있다.

사랑의 사도라고 하는 요한 사도는 이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임을 본다. 요한일서4:20~21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형으로 구성된 이 우주적인 가족으로서의 한 부분이요 지체요 모형인 우리의 교회 속에서 우리 각자가 주님의 가족으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점검 함으로서 신앙의 보다 사실적인 부분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결코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막연한 것도 아니다. 특히 우리가 건강한 가정 속에 있다면 하나님의 가족의식을 이해하는 것은 더 쉬우리라고 생각된다.

Ⅰ.가족이란?

우리는 모두 각 육신의 가정에 속해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무엇임을 다 잘 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유쾌하고 행복한 곳이 가정이다. 물론 말세적인 현상들이 많은 가정들에서는 이런 가치들을 빼앗아 가고 있지만 가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가 바로 이 가정과 같아야 하고 가족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밖에서 무시를 당하고 피곤한 몸이 되었어도 이 세상을 살기위한 재충전을 받는 곳 그곳이 바로 가정이고 가족 관계이다. 교회의 예배에 와서 단순히 말씀만을 듣고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상호간의 교제를 통해서도 우리의 삶의 문제들이 해소 되도록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집에 들어서면서 “home sweet home!”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 온간 간섭과 눈총 속에 일을 마친 세일즈맨은 돌아와서 “Oh my sanctuary!” 라고 외치며 문을 닫고 들어선다.

물론 요즘은 가정이 해체되고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가정 치유의 문제들이 중요한 교회나 사회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가정이나 가족이란 눈치를 봐도 되지 않는 우리 가족 구성원들의 성역(聖域)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의 교회가 그와 같아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1.서로간에 이질감이 없다. 서로가 옆에 있어도 경계 되거나 눈치가 보이거나 어색하지 않는 곳이 가족이고 자신의 집이다. 그래서 잠옷을 입고 있어도 앞을 좀 어질러 놓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가족 서로의 왕국이다. 외양을 꾸밀 필요가 없다. 만약에 가정에 이런 모습이 문제가 된다면 그 가정이나 가족은 문제 있는 가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 문제가 있는 가정들은 남편이 손님처럼 여겨지고 자녀들도 와서 잠만 자고 먹고 나가는 여관방이나 식당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들을 더러 듣는다. 그러나 가족과 손님은 분명히 다르다. 가족은 집에 함께 있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고 함께 있다고 하는 자체가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게 되지만 손님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Make yourself at home!”라고 말하지만 손님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먹는 것에서 자는 것까지 가족은 아무래도 괜찮다. 그러나 손님은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교회 속에서 그래야 한다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평안함이 주님의 교회에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2.가장 가까운 칭호만이 쓰인다. 가족간의 또 다른 특색은 명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무어라 부르든지 수시로 명칭을 바꿔 써 보지만 역시 자연스럽고 감사하기만 한 존재 역시 가족임을 확신할 때 가능하다. 미국의 North Boulevard 교회에서는 인원이 약 3,000명이 넘기 때문에 서로 일일이 이름을 기억할 수 없고 그래서 그 교회의 특징은 모두가 한결 같이 플라스틱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것을 봤다. 그러나 어느 이름 표에도 직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교회 구성원이 되면 바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명찰을 만들어 붙이고 다니게 했다.

진정한 가족은 관계 속에서의 이름만이 필요하다. 바울이 이 사실을 교회에 환기 시키는 말씀이 바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1~2) 아무리 사회 속에 높은 지위를 가진 아버지 일지라도 가족 관계 속에서는 아버지요 남편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온 가족을 먹여 살려도 아버지는 아빠라는 호칭에 더 행복할 수 있고 매끼 식사를 장만해 주지만 ‘주방장님’이라 하지 않고 ‘어머니’라 한다. 가족은 명분(名分)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섬기는 교회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3.서로를 기꺼이 주고자 한다.(나눈다.) 가정 일에 관심은 가족인지 아닌지가 구별된다. 그것이 시간이든 물질이든지 행복이든지 고통이든지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주고 받아도 어색함이 없는 그것이 비로소 가족 관계이다. 홀로 짊어지는 괴로움도 혼자만 누리는 풍요도 건강한 가정 속에서는 있을 수 없다. 왜 서로의 아픔을, 부채를 감당해 주는가? 그것은 단순한 이유 즉,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영적이 가족인 교회 속에서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물질을 쓰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의 가장 사실적인 표현이다.

4.보호하고 옹호한다. 사람들이 자기 가정의 부끄러운 일을 밖의 사람들에게 퍼뜨린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에게는 자기 가정의 좋은 것들만을 자랑하고 선전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가족 간에는 비밀이 없다. 비밀을 나누는 것이 가족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일이라면 죄성의 사람들을 더 퍼뜨리려고 한다. 서로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남이 다가오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쉬쉬할 것이다. 누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잘 못 말하면 분내고 항변할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그래야 한다. 억지가 아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천국의 가족이다.

Ⅱ.피로 맺어진 관계이다. (16~17)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1.가족은 피로 연결되어 있다.

가정과 가족의 대표적인 관계는 무엇보다도 혈통의 문제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언약 즉, 결혼의 관계이지만 이것 역시 피로서 계승되고 어머니는 자신의 피를 모아 자녀를 생산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가족이 되도록 자신의 피를 통해서 하나로 묶어 주셨다.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엡2:13) 우리 모두는 피로 맺어진 이 세상에서 끝나는 육신의 가족보다도 더 중대한 영원의 가족이다. “믿습니까?”

2.사랑의 관계이다. (11~12) 가족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어지는 관계이고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관계이고 사랑을 먹이로 자라가는 관계이다. 이 것은 세상의 어떤 조직과도 다른 특별한 관계이다. 바울은 우리가 가족된 사실의 근거를 고백하여 이르기를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라고 고백한다. 단순히 사랑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은 바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11~12) 경쟁의식이 들어와서 아우를 죽이고 마는 비극을 인용하고 있다.

사실 서로의 배려와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우리가 바로 이 사랑의 가족 관계로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3.법이 있지만 법이 우선이 아니다.

어디에나 위계질서(位階秩序)는 있고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우선하는 곳은 온전한 가정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사랑은 법에 의해서 지배 받는 장소가 아닌 사랑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확실한 성경적인 선언과 함께 익숙한 또 하나의 별명이 바로 가족이고 가족은 피를 나눈 혈연의 관계이고 여기서는 굳이 법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가족관계도 법으로 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법 이전에 말할 수 없는 주님의 피흘림의 사랑이 바탕이고 존재하는 이유이고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의 진단 시약 (診斷 試藥)인 것이다.

Ⅲ.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그 가족이라는 사실적인 증거다.(13~15)

1.세상에 미움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13) 경고한 가족간의 사랑의 관계 속에 산다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직접 말씀하신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상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에 더 가깝거나 그들과 더 잘 조화된다면 여기에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2.가족임을 의심할 수 있는 모습.(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Ⅳ.결론. (14)

바울 사도는 가정의 문제 부부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말하기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고 선언한다.

나 자신이, 우리가 속한 교회가 오늘 말씀과 함께 지금 어디에 속했는가에 대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거룩한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에 감격하고 지배당하는 교회가 진정 영원의 약속과 주님의 썩지 않고 쇠하지 않을 기업을 상속할 주님의 가족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4)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의 심판 비유는 바로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하면서 사실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한 심판이다.

오늘 나는 어느 것을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는가? 나는 세상에 가까운가 주님의 가족인 교회 속에서 자연스럽고 평안하며 행복하고 만족한가? 이 영원한 가족과 가정인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물질과 몸과 시간으로서 헌신하고 희생하며 섬기는가? 이 말씀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와 우리 각자와 교회가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