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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8:1~14 2005-08-07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마태복음의 다섯 교훈[산상보훈5~7, 제자 파송의 교훈10, 천국비유13, 겸손과 용서18, 외식의 신앙 규탄과 감람산 말세 교훈23, 24~25] 중에 네 번째 교훈으로 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겸손으로 하나되어 범죄에서 서로를 지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 한 형제에 대한 회복의 방법과 용서의 교훈으로 교회 구성원들 간의 지체로서의 관계가 중시되는 영적인 교훈으로 구성되고 있다.

오늘의 내용은 ‘어린아이’ 혹은 ‘소자’에 대한 조심성과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곧 천국과 지옥에 관련되어 있으며 천국의 가치와 어떤 사람도 천국에서 잃어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강조하신다. 성경은 신앙의 연륜보다도 신앙의 현재적 상태를 중시하고, 많은 믿음의 연륜을 가지면서도 자라지 못한 믿음에 대하여 책망하고 성장을 반드시 이루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연약한 신앙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 늘 당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제 신앙을 시작하는 초보들에 대해 더 파격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어린아이에서 자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꼴을 짓밟고 물을 더럽히는 양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을 듣는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겔34:17~20)

거짓된 신앙이나 교훈에 대해서 그렇게 강한 바울 조차도 신앙이 연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의 기복적 욕구조차도 포기하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로마서14:1~3에서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하였고 21b절에 “…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다시 15:1~2에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 당부하고 나서 자신은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신앙은 반드시 자라야 하고 그 자람이란 사실 나 자신의 비중과 혈연적인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서 점점 커지고 육신의 혈육보다는 구원과 능력의 피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인한 하늘의 가족사랑이 더욱 강하게 작용해 가는 것이라고 해도 그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귀중한 신앙적 삶의 과제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회복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



Ⅰ.천국에서 큰 자는 역시 겸손한자.(1~5)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군가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했던 것처럼, 사실은 이 문제는 제자들의 변론으로 시작된 것으로 마가와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막9:33b)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눅9:46)] 어디서나 위아래를 따지는 것이 세상 어느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이다.

학력, 경력, 지위, 나이, 촌수 항렬(行列), 범죄 한 인간 본능은 지배 욕구가 어디서나 발동한다.(유치원 생들에게서나 초등 학생들 사이에서 조차 이런 서열을 찾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간의 남의 위에 서려고 하는 사악함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갖는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자연인으로부터 죽고 거듭났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도 여전히 이런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이 잠시 주님과 사이가 뜬 순간에 행했던 것들이 바로 이 서열문제로 다투는 것을 아신 주님은 안타까웠던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 말씀은 모든 관계에 질서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히 위계질서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것을 깨뜨리는 것에 대해서도 성경은 경계하고 있다. 권력자들에 대해(롬13:1~7) 부모에 대해(엡6:1~3) 상전에 대해(엡6:5; 골3:22; 딤전6:1~2), 특히 1세기의 노예제도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이니 주인을 반역하라거나 하는 부추김은 성경에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어려움을 끼친다고 해도 벗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7:20, 24)

다만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권력욕은 죄의 근본인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사야는 바벨론 왕의 교만을 범죄한 천사의 모습에 견주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14:12~15)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섬김의 자리를 뛰쳐나간 범죄한 천사들에 대한 경계를 주고 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사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심오한 사실을 요한 사도는 두 곳에서 전하고 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12:31)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요 주님을 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 할 죄악이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한 모델로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2~4)

이 어린아이는 일차적으로는 분명히 겸손의 모델이었다.(그러나 죄를 가진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과연 천국의 모델로 제시하실 수가 있을까?) 주님께서는 최고의 겸손의 모델이시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먼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라고 가르치고 그러기 위해서 모델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다.(빌2:5~8)

세상에서는 스스로를 높이고 선전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기를 기대하며 겸손한 자세가 되어야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다. 교만했다가 낭패를 본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사실 입으로는 겸손을 강조하면서도 내면은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은 아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겸손이 몸에 배어서 자연스러운 겸손이 묻어나올 수 있는 …



Ⅱ.죄짓게 하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6~9)

범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엄청난 비극을 불렀다. 그래서 성경은 경계해야 할 것들 중에 가장 으뜸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 바로 범죄에 대한 교훈이다. 인간의 비극은 바로 범죄에서 왔고 범죄는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과 이웃과 자연 그리고 자신과의 부조화를 만드는 모든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타인을 죄짓게 하건 자신이 범죄 하건 모두가 치명적임을 경계하신다.

[어린아이, 1~5, 헬, 파이디온(paidion), 유아, 반쯤 자란 소년, 소녀, 비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즉, 처음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 소자, 6, 10, 14, 헬, 미크로스(mikros), 계11:18 작은, 가장 작은, 조그마한]



1.남을 죄짓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 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는 것을 가장 무서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을 주님은 여기서 말씀해 주고 계신다. 그것은 바로 약한 신앙의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이라는 두려운 말씀이다. 이 기록이 사실대로라면 우리 육신의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남을 신앙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가리켜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확실히 자살해 죽으라는 무서운 권고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하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세상에 화가 있는 이유가 바로 실족케 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7f) 그러나 여지를 남겨 두시는 데 그것은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7m)하신 것인데 이것은 실족하는 사람 스스로의 문제이고 이미11:6에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7:23)는 내용을 봐도 온전함으로 대하는데도 실족하는 일은 있을 수 있음을 증거 하신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안도할 수 없는 것은 연이어지는 말씀이다.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어떤 이유에서든 연약한 믿음의 사람을 실족 시키는 자에게는 복이 아니라 화가 있다고 하신다.



2.자신을 죄짓게 하는 것도 경계하신다.(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남을 죄짓게 하지 않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짓게 하는 지체도 문제이다. 이 말씀은 확대하면 교회를 한 몸으로 비유하기 때문에[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역시 다른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기도 하다.

‘죄를 철저하게 잘라 버리라!’는 경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죄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단절하라는 의미이다.[도박에 빠진 사람이 이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화투를 잡는 오른 손을 잘라버렸다가 화투장을 팔로 옆구리에 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씀은 사지를 자르는데 요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경계에 더 주안점이 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육신의 받은 할례를 의지하고 안도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롬2:28~29f) 육신의 죄의 끈을 자르지 못하는 자기 민족에 대한 한탄을 하는 바울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다른 면에서 이 말씀은 지옥의 참혹상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으로 쉽게 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지옥에 가는 것은 면해야 한다는 두려운 교훈이다. 우리는 지옥에 대한 경계심이 사실 너무나 약하다. ‘지옥에 밖에 더 가겠느냐?’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은 분명 이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하시는 말씀이 온 사지가 다 잘리고 눈이 없는 몸이 되더라도 지옥에 가는 것만은 면해야 된다고 경계하시는 음성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죄와 지옥에 대한 경계를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서 천국을 잃지 않는 …



Ⅲ.잃어진 한 영혼을 찾으신다.(10~14)

(10)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2)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누가복음(15:3~7)에 더 분명히 기록되고 있지만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비유의 말씀이다. 잃어진 그 영혼들을 찾기 위해서 자신이 인간이 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오셔서 찢기고 상하셔서 잃어진 영혼인 우리를 자신의 피값으로 사 주셨다. 하나님 자신이 치르신 십자가의 희생의 역사(役事)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먼저 구원 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이다.

지극히 연약한 자, 어린아이 하나가 잃어지는 것도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4) 그러므로 지옥은 절대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하나님은 결코 한 사람도 지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주님의 안타까움은 회복된 99명을 두고 잃어진 한 영혼에 더 마음을 두신다. 때문에 지금도 주님은 잃어진 한 영혼을 찾고자 모든 것을 희생하신다.

양의 성격상 한 마리는 분명히 문제 있는 양이다. 무리를 빠져 나와 목자를 거역한 양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님은 그러한 자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온 인류가 모두 구원을 얻기까지 만족치 못하시는 분이시다. 한 영혼이 저주와 절망의 그늘에 있는 한 주님은 결코 행복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한 잃어진 사람이 생명으로 회복할 때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3) 하셨고 이런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약속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의 이 귀한 약속은 유효하다. 그러나 나 자신의 믿음을 가누기도 힘겹고 다른 사람들, 특히 세상에서 각자의 안녕과 지위를 위한 노력은 지나치리 만큼 하면서도 잃어진 영혼을 위하는 마음은 희미하기만 하다.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고 현실보다 영원 속에서 영광을 새롭게 인식하는 …



어린아이는 남보다는 자신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간악함 보다는 본능이다. 그렇기 대문에 그러한 행동을 보고 서운해 하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오랜 연륜이 지났음에도 미숙아로 남아 있어서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병이다. 벌써 장성해서 남을 돌볼 시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연약한 자들을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주님은 탄식하신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2)

남은 물론이고 자신을 죄짓게 하는 것도 가장 큰 비극이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8) 천국에 합당한 모습으로 자라고 더불어 신앙을 격려하고 의를 행하게 하는 역할들을 하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들로 역할 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6~17)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2~33)고 권면한다.

하나님은 잃어진 한 영혼을 안타까워 하심을 헤아릴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