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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19:16~30 2005-09-04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마19:13~15) 바로 앞의 말씀과 이 말씀은 무관하지 않다. 장터에서나 동네 한 어귀에서 사람들을 모아 검증되지 않은 만병통치약을 팔면서 덕스럽지 못한 것을 말할 때 “애들은 가라!” 하셨지만 사람이 모여드는데 오는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그리스도는 확실히 달랐고 그들의 단순성과 겸손을 오히려 천국의 백성으로서는 본 받아야 할 삶의 모범으로 칭찬하시는 주님은 무엇이든지 천국을 누리게 하려는 목적에서 비유와 모범으로 사용하시는 모습을 본다.

주님께서 이미 산상보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눅16:13)하신 가르침의 가장 사실적인 검증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된다. 이것은 비단 동산이나 부동산의 유형적인 재산에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지적소유권]이라고 하는 지식의 많은 축적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생명을 누리는 것들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Ⅰ.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소원을 본다.(16~22)

많은 대화가 있지만 이 말씀의 전반부의 핵심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b)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하심으로써 어떤 사람이든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같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아담이후로 모든 인류는 범죄 하여 영원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창조의 속성은 모든 사람에게 살아 남아있어서 영원과 생명을 희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이 청년은 눅18:18에 보는 대로 계급이나 권세에 있어서 ‘방백, 왕, 통치자’였을 [헬, 아르콘(arxon) 관원]인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고, 그런 가운데도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막10:17) 라는 그의 자세로 봐서 진리를 향한 갈증과 겸손을 가진 사람인 것으로 짐작이 되는 요즘 표현으로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청년이었다. 나중에 나타나는 것처럼 재산도 많고 가르침 받은 계명도 모두 지키는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5~6)였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 부자 청년은 계명을 나름대로 지켜왔고 재산이 많았지만 행복이나 천국의 확신도 없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의 한계와 사실적인 모습이 이럴 것이다.

여기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단편적인 이야기는 차치해 두고 주님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이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청년의 질문에 이렇게 명령하시면서도 주님은 이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라고 답변하지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고 자만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는 것을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21) 라는 말씀에서 엿볼 수 있다.

또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는 청년의 질문에 답하는 계명들은 사실 하나님을 향한 계명들이 아닌 인간대상의 계명들이고 순서도 십계명과는 다르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18~19)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출20:12~17)

바울 사도는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3:21)고 선언하고 있는데 율법이 결코 온전히 지켜도 구원 얻지 못할 법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고 불완전한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논고하고 있다.

바울을 비롯한 많은 바리새인을 포함한 율법 주의자들은 율법의 항목을 자신들이 지킨다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율법이 없는 다른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하는 것 때문에 이 청년처럼 자만하고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막10:20; 눅18:21)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b)라는 자기 교만에 빠져 있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바울은 이를 가리켜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고 고백하는 것을 듣는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율법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b)고 ‘자신의 공로’를 ‘영생 얻을 대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복음 속에 있는 사람들조차 마찬가지이다. 내가 온전히 십일조를 드렸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이라고 연보 한다. 그러나 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받은 것이라면 나의 행하는 어떤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나 자신이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송하지만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상들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는 바울의 고백이 사실적인 나의 고백이 될 때 비로소 이런 사람은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b)라는 어리석음으로 이 지구촌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하면서 그 상급으로 알라에게 인정을 받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결국 “…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눅18:22]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하심으로 이 청년의 살 길을 주셨고 마가의 병행되는 귀절에 읽을 수 있는 대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마10:21f) 라는 기록으로 봐서 주님은 부족하면서도 그 부족을 채우려 자신을 찾은 이 청년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자유를 포기하는 안타까움을 보이고 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눅18:23]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

주님께서 이 청년에게 당부하신 두 가지의 명령은 결국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본다. ①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회개] ②와서 나를 좇으라!-[섬김] 오늘도 어찌 보면 같은 원리로 주님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①세상적인(죽음의) 원리로 살던 것을 하늘의(생명의) 원리로 돌이키라! ②와서 나를 따르라!(섬겨라-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은 분명히 살 길을 주셨음에도 그 생명의 말씀을 옆으로 흘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만다. 이 청년이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마태는 기록하기를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라고 밝히고 있다. 아직 청년이면서 재물이 많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수고로 번 것도 아닐 것임에도 부모의 많은 유산이 이렇게 때로는 생명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런 자들에게 말씀은 기쁨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도 그 말씀을 가로 막는 것이 있을 때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만다. 주님께서는 듣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는 두려운 말씀을 주고 계신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 이 사람은 영생(생명)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영원히 멸망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고, 저주 받도록 정해진 나의 영원한 절망과 수치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온 갓 나의 수치와 고통을 십자가에서 대신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로 아는 것은 분명히 삶의 질을 바꾸기에 충분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앎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가니라”는 …



Ⅱ.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23~26)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님을 이 부자 청년을 보면서 알게 된다. 결국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세상에서 힘을 가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이런 까닭에 어찌 보면 하나님보다 현실 속에서 위력이 있는 것 같은 큰 재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평생을 의뢰하고 보호를 받던 그것을 이제는 버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주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듣고 놀란 것도 표면적으로는 무리가 아닌 것이 율법의 모든 약속에 하나님을 잘 순종하면 땅에서 복을 받고 잘 될 것이라고 하는 신명기적인 약속이 천국에 들어 가는 데는 헛되다고 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의아심 이다. 특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 시는 말씀은 어떤 입장에서 이해를 해도 불가능함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해답은 있으니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26)는 이 말씀은 참으로 은혜 되는 약속이다. 실제로 생명에 관한한 사람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또 사람의 노력과 하나님의 선물의 간격이 이럴 것이다. 주님의 혈육이었던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모든 좋은 것들은 사람의 노력으로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또 구원조차 인간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 얼마나 억울할 까 싶은데[사람들의 모든 조건은 사실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어려운 조건 속에 태어난다. 그런데 영원과 관련된 구원이 사람의 조건에 관련된다면 하나님은 불평등한 분이라고 힐난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인데 구원은 절대로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서라는 공평한 약속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공평한지 모른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구원은 인간의 능력에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묶어 두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세상적인 조건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에는 더 유리한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2:5) 할렐루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26)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할지라도 확실한 청지기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부자라고 할 수 없고 사실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의 진정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 길을 말씀하셨으나 결국 스스로 죽을 길을 택하고 말고 오늘도 이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재산을 처리하라고 할 때 즉, 그 재산의 쓸 곳을 이르실 때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재산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일 때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청지기 개념의 재산가라면 그 재산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사람이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잠시 맡겨두신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으로만 살 수 있다면 재산을 모으는데도 보다 정직할 수 있을 것이고 쓰는데도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을 것이다. 재산에 대한 청지기 개념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관리자이기 때문에 교만하지도 거짓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인간의 판단이나 눈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하시는 하나님은 하시기 때문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만이 진리인줄로 믿으시기를 …



Ⅲ.주님을 위하여 버린 자들의 상급은 무엇인가?(27~30)

베드로는 자신 만만하게 자신의 입장을 증거 하는 것은 사실 그랬기 때문이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는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4:19~20)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21~22)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자시들의 삶의 터전과 보호처인 가족조차도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좋았다.

마태는 전도하러 나간 제자들을 대접하는 자들에 대한 상을 이미 말씀하신바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1~42; 막9:41)고 만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 없다고 약속하고 있다.

[101:1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 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후렴)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귀 하신 이름 예수 아멘]

마가는 이 부분을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b~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8:29~30)

오늘의 마지막 말씀이 우리를 더욱 경성케 한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0) 천국에 관한한 누구도 앞서있다거나 가까이 있다고 자만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다가 뒤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이유에서 늘 경성한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모든 인류는 범죄하고도 하나같이 영생을 오해하고 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6b) 죄에 살면서도 무엇인가 영생을 위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함으로서 그 대가로 생명이 주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생이란 창조주와 구세주를 아는 삶의 질의 변화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자신의 작은 공로를 헤아리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개망나니도 변화 시켜서 천국백성을 만들 수 있음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한다. 인간의 생각으로 사람의 구원을 제한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믿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복음 증거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드려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영광의 보좌를 베풀 때 비교될 수 없는 것으로 보상되고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하고 천국을 위한 투자에 가진 것을 아끼지 않는 모두가 되시고 그러면서도 나중 될 수 있다는 경성으로 믿음의 앞자리 만은 놓치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