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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전도자
마 20:1~16 2005-09-11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가 읽은 말씀의 그림이 머리에 그려진다. 오늘의 우리 시대의 일력시장의 한 단면 같은 모습을 오늘의 내용에서 접하게 된다. 새벽 일찍 시장모퉁이에 작업복 차림으로 목에는 수건을 질끈 묶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일의 성격에 따라 몇몇 사람들이 차출되어 나가고 마침내는 해가 뜨고 일을 잡지 못해서 오늘도 허탕을 쳤다고 허탈해 하는 남은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올리브 농사와 포도 농사는 가장 흔한 농사 일이고 주님은 언제나 가장 일반적인 상황들을 통하여 깊은 진리를 가르치시는 신비를 여기서도 대하게 된다.

오늘 이 말씀도 지난 주의 마지막 말씀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는 내용과 연결되어지는 말씀이며 같은 말씀이 오늘 내용의 말미에 다시 기록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는 말씀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쉽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이다. 지난 주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계명을 다 지키며 살아 왔는데 또 무엇이 부족한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보다는 자신의 의가 더 생각나기 마련이고 그런 믿음 생활에 기쁨이 충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 이 비유가 말씀해 주는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시는 구원을 맛본 자들이 하나님께도 더욱 감격하여 충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회의 일반적인 비유를 통해서 교훈 해 주시고 계신 것이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께 늘 감격하고 충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의 몸 된 교회를 핍박했음에도 마침내 자신을 주의 일꾼으로 택해 주신 은혜 때문에 바울은 꼼짝 못하고 그 사랑과 은혜에 자신을 드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2~16)

언약의 민족인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이면서도 이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의 포도원에 구원이란 놀라운 약속을 받고 일하게 된 감격을 늘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뒤쳐짐이 없는 …



Ⅰ.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1~7)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2)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3)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우리는 선택된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되고 있는 구약의 말씀들을 볼 수 있고(사5:1~7) 이 비유의 특이한 내용은 일꾼을 찾으러 주인이 직접 나갔다고 하는 사실인데 이 역사 속에 그의 사람들을 부르시러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고 한 데나리온은 당시의 하루 품삯이지만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조금은 다른 비유이지만 요15:1~1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의 일원으로 약속 받은 구원으로 이해하는 무리가 없는 것 같다.



1.역사적인 시대와 사람들의 연령을 포함한 전 시간을 의미하는 비유이다. 유대인들의 낮 시간을 나누는 시간 단위이다.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12 시간대로 나누어 특히 세 시간 단위로 거론되는 예를 성경에서 더러 본다. 아침(AM 6 時), 제 삼시(AM 9時), 제 육시(낮 12 時), 제 구시(오후 3 時-행3:1, 10:3, 30), 제 십일시(오후 5 時) 그리고 저물매(오후 6 時) 라고 한 시간대는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에 참여 시킨 사람들이라고 보고, 어떤 교회 속에서 신앙의 연륜을 비교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의 연령대로도 비유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 속에서 모든 종류와 연령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고 계시고 약속된 구원의 은혜인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약속으로 부르신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일꾼으로 부르신다.



2.하나님의 나라에서 쓸데없는 사람은 존재치 않는다.

천국의 일꾼은 능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고 순종과 성실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능력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절히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상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자격은 주인의 판단에 의해서 주어진다.



Ⅱ.그러나 반드시 결산할 때가 있을 것이다.(8~10)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역사는 저물어 가고 있다.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지만 매년 포도 농사가 포도를 따고 나면 마무리 되고, 겨울이 오고 마는 것처럼 반드시 역사의 겨울, 시대의 밤은 오고 말 것이며 이 역사도 마지막(omega point)을 향하여 가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초청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인데 끊임없이 일꾼을 부르시는 사랑의 초청도 반드시 끝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 끝의 기시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서 사람들을 경성케 한다.

그러므로 초청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며 이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영원히 하나님의 포도원인 천국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경계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일하지 않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순종으로 일할 시간이라는 경계이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의 경계를 듣는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1~2)



2.일한 것에 대한 품삯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품삯을 받을 때가 있고 다른 말로는 상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우리는 섬김의 일을 지루하고 따분하게 길게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수고의 대가는 반드시 보상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주님의 약속이다.



Ⅲ.공로와 대가의 차이를 본다.(11~16)

(11)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수고를 헤아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는 가려지고 바울처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6)는 고백으로 은혜를 앞세울 때 자신의 한 일은 하찮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1.은혜 받은 자들의 감격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이들은 사실 주인이 장터에 나갔을 때 하소연을 했던 사람들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했을 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7) 라고 탄식했던 사람들이다. 사람들로부터 소용이 없는 존재로 무시 받는 존재들이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되고 보면 돈을 벌기 보다는 누가 일만 시켜줘도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IMF 후로 실직자가 많이 생겨나면서 ‘일 좀 해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한 이들에게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는 명령은 얼마나 행복한 한마디였을까? 여기서도 감격할 만 한데, 한 시간 일을 끝낸 그들에게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은 감격하기에 충분하고 사실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임을 받은 우리들은 다 이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요, 은혜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버려짐을 당해도 마땅한 자들이다.

눅14:15~24; 마22:1-14 큰 잔치의 비유를 읽을 수 있는데 사실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 때문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14:21) 사실 이 비유도 이스라엘의 거역으로 천국에 초청된 이방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한 이방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경고하여 이르기를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0~22) 하였다.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7m) 사실 죄인으로서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으로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엡2:12)었던 가련한 인간 군상들이었던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들로 사용 받는다는 감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민족인 이스라엘과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이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요 사랑의 하나님의 은총일 뿐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엡2:12~13) 할렐루야!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 라는 바울을 통한 다윗의 고백은 바로 제 십일시에 포도원에 초청 받은 것과 같은 우리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의 감격의 고백이다. 그럼에도 뒤쳐진다면 나중 된다면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2.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의 비교를 본다.(10~12)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문제이다. 약속은 지켜 졌지만 이들은 자신의 속된 판단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수고를 헤아리는 것으로 은혜를 욕되게 평가 한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여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13)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지키시는데도 세상적인 가치인 상대적 평가의 잣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욕되게 하고 있다. 결국 절대적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잘못 오해하게 된다.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오히려 은혜의 사람이었다면 “버림 받은 저들에게 긍휼을 입혀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감사할 수 있을 텐데도 나의 수고에 다른 사람들의 일한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비례하는 자체가 죄성을 가진 인간의 욕심이다.

성경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인물의 표본이 바로 요나 같은 사람이다.(욘4:1~3)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결국 요나는 자신의 성냄을 책망하시는 하나님께 불편한 심기로 항의 한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9) 이정도 되고 나면 사실 구제책이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혜를 얻지 못할 자에게 은혜를 더하신 것이다.(14~15)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4~25; 33:17~20)



3.비유의 결론이자 경계의 항목이다.(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여기 약속된 한 데나리온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이다. 구원은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8~39) 결국 오래 섬기고 많이 일한 것을 내세울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가려지고 불평은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 속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시고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 결국 모든 역사 속의 모든 종류와 연령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죄 사함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시고 계신다. 범죄 한 인간 스스로는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라는 고백처럼 영적인 것에 관한한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그래서 인생의 세월을 허송으로 소비할 수 밖에 없는 가치 없는 인생들에게 오늘도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4, 7)고 권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한 일이 보잘 것 없을 찌라도 우리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구원과 영원을 약속하신다.

마귀는 참소하기를 “그가 한 것이 없는데 무슨 영광을 주겠습니까?” 라고 비난 할 때도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4~15)고 책망하신다.

교회를 핍박하다가 마침내 교회를 위해 일하게 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고백한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8) 많은 세월을 최선을 다해 섬겼을 찌라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눅17:10)는 고백을 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늘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고 많이 봉사하고 섬긴 자들이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다. 경성하지 않는 다면 나의 수고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가려 버리고 나중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